태풍 이재민들 피해보상소송 봇물 태세

입력 2002-09-16 15:47:00

태풍 '루사'로 피해를 입은 수재민들이 당국 등의 허술한 대처로 큰 수해를 당했다며 보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잇따라 제기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부 수재민들이 벌써 변호사를 선임, 정부 등을 상대로 수천억원의 소송절차를 준비함에 따라 향후 봇물을 이룰 집단 손해배상청구소송의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수해와 관련된 그동안의 법원 판결을 보면 '인재'여부가 가장 중요한 판단기준이 됐다.

관계 당국의 잘못이 명확하게 입증돼 인재로 확인될 경우엔 소송을 낸 원고의 손을 들어준 반면 천재로 인정되면 원고들이 패소했다. 각 소송에 따라 판결 결과가 달라지는 이른바 '케이스 바이 케이스'란 얘기다.

최근 판결 중 주목을 끈 소송은 집중호우로 도로가 침수되면서 가로등 누전으로 감전사한 3명의 유족들이 서울시 등을 상대로 7억여원의 배상판결을 받아낸 것.

법원은 "누전사고가 난 가로등 안정기의 위치가 지상 60cm에도 미치지 못해 집중호우가 아니더라도 침수될 가능성이 있었다"며 "서울시 등은 가로등 근처에 집중호우로 물이 가슴까지 차 감전사고의 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경찰과 한전 등에 바리케이드 설치와 단전을 요청하는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았으므로 배상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또 장마철에 배수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공사를 진행하다 인근 상인들에게 침수피해를 준 주택.도로공사에 손해배상 책임(5천58만원)을 인정한 판결도 있다.

재판부는 "원고들의 건물이 저지대에 위치, 강우로 인한 침수위험에 노출돼 있었던 만큼 인근에서 사업을 시행하던 피고들은 침수위험이 증대되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며 "훼손된 배수로를 방치하는 등 빗물이 원고들의 건물쪽으로 넘쳐 흐르도록 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반면 하수시설 등이 적법 규모로 설치됐다면 예년 수준을 웃도는 집중호우로 인한 침수피해를 자치단체가 배상할 책임이 없다는 판결도 있다.

시간당 90~99.5mm의 집중호우로 침수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서울시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은 "서울시가 간선 하수관 경우 과거 10년간 시간당 평균 최대 강우량을 참조, 시간당 74mm 용량으로 설치했으나 예년 수준을 넘는 90mm 이상의 집중호우가 내린 점이 인정된다"며 "집중호우에 대비한 수해방지시설을 갖추지 못했다 하더라도 시설에 하자가 있다고 볼 수 없어 원고들의 수해는 자연재해에 해당된다"고 지적했다.

96년 경기 연천댐의 범람.붕괴 등으로 침수피해를 본 주민들이 낸 소송에 대해서도 법원은 "강우량이 엄청났기 때문에 설계.시공상의 하자나 관리소홀이 없더라도 댐의 붕괴는 막지 못했을 것"이라며 원고들의 항소를 기각한 바 있다.

이대현기자 sk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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