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한우산업-(10)일본 '화우'생존전략

입력 2002-09-13 14:37:00

'우수한 종자 보존과 고품질 차별화, 브랜드화로 일본 화우(和牛·와규) 시장을 지킨다'우리보다 10년 빠른 지난 91년 4월부터 국내 쇠고기 시장의 빗장을 열어젖힌 일본.일본 화우산업도 1인당 고기 소비량이 늘어나고 국내 사육농가는 줄어드는데 수입 쇠고기는 증가, 우리 못지않게 어려웠다.일본은 어떻게 화우산업을 지켜 왔는지 등 화우 생존전략을 현지 취재를 통해 살펴봤다.

△일본의 상황

수입개방과 함께 생우도 연간 1만~2만마리가 수입됐다. 수입 쇠고기는 지난 90년 38만4천t에서 지난 99년 68만2천t으로 늘어나 수입쇠고기 비중이 49.4%에서 64.7%로 확대됐다. 반면 국내산 자급률은 50.6%에서 35.3%로 감소세다. 화우 사육 두수도 90년 166만4천마리에서 2000년 170만마리로 소폭 늘었다.

또 화우를 포함한 육용우 전체는 270만마리(90년)에서 95년 296만마리로 증가하다 96년(290만마리)부터 줄기 시작, 지난해는 280만마리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화우산업의 입지가 위축돼 농림수산성은 2010년을 목표로 한 장기대책을 재작년 4월에 마련, 자급률 38% 확보를 위한 각종 정책을 추진하며 화우산업보호에 나서고 있다.

△우수 종자 확보

일본 화우산업의 생존전략은 우수한 밑소 보존에 역점을 두고 백년이 넘는 개량사업을 진행해 왔다고 고베에서 만난 고베대학농학부 응용동물학과 츠치 소이치 교수는 밝혔다.

뛰어난 품종과 계통의 밑소들이 정착, 보급됨에 따라 육질의 고급화를 이뤄냈다는 설명이다. 화우 밑소로는 주로 흑모화종(黑毛和種)과갈모화종(褐毛和種), 무각화종(無角和種), 일본단각종(日本短角種) 등을 들었다.

특히 흑모화종 가운데 타지마규(但馬牛)는 일본의 대표 브랜드인 '고베(神戶)비프'나 '마츠자카(松阪)규' '히다규(飛彈牛)' 등 최고급의 쇠고기를 생산하는 화우로 자리잡았다고 츠치교수는 말했다. 츠치 교수와 영남대 자연자원대 여정수 학장은 흑모화종이 한반도에서 들어온 것으로 추정했다.

흑모화우에 버금가는 갈모화종은 한국의 개량 한우로 불릴 정도로 한우와 모양이 흡사하다. 구마모토현을 시작으로 시즈오카·미야지키·아키타·홋카이도 등지에서 사육되는 고기소가 갈모화종이다.효고현 고베시의 산골마을 타지마 마을에서 자라는 타지마규와 같은 우수종자를 철저히 보존·관리하면서 송아지를 생산해 농가에 보급, 오늘의 '고베비프'가 탄생하게 됐다고 고베시립 농업공원의 나가이 요시하루 참사는 말했다.

고급육의 대명사처럼 된 타지마규는 돗도리현과 경계하는 효고현 북부 산골마을 미가타군(美方郡) 온센쵸(溫泉町) 타지마(但馬) 마을의 화우를 지칭한다. 요즘은 바로 옆의 키노사키군(城崎郡) 히가타쵸(日高町)에서도 생산, 전국 각지로 공급되는 타지마규는 100년에 걸쳐 개량됐다고 츠치교수는 소개했다.

이처럼 제한된 곳에서 생산된 타지마규의 정자는 효고현 북부지역에서 수정, 송아지로 번식돼 남부지역 농가에서 사육된 뒤 시중에 출하되는 시스템을 유지함에 따라 명성을 이어간다고 츠치교수는 강조했다.

지난해 일본 현지조사를 벌인 영남대 자연자원대 조석진 교수에 따르면 기후(岐阜)현이 히다규란 브랜드 고급육 생산을 위해 1981년 1천만엔에 사들인 타지마규는 1993년에 죽을 때까지 인공수정을 통해 2만8천마리의 송아지와 30마리의 종모우, 3천마리의 씨암소를 퍼뜨려 12년간 75억엔의경제적 가치를 창출했다고 밝혔다.

△고급육 브랜드화

일본은 화우의 고품질화를 통해 수입고기와 철저한 품질 차별화로 생존전략을 펼치는 것 같다고 지난해 일본 화우산업을 둘러본 전국한우협회 이규석 회장은 진단했다. 화우의 5단계로 나눠진 육질등급에서 나타나는 등급별 출현율은 이를 잘 말해준다.

재작년 한우의 육질1등급 출현율은 24.8%인 반면 99년 일본화우의 3등급(한국의 1등급) 이상 5등급까지 출현율이 76.3%에 이르러 한우보다 3배나 높았다. 특히 최상급인 4~5등급(한국의 1+등급)은 한우(6.5%)보다 7배 가까이 높은 43.5%로 육질고급화가 완전 정착됐음을 나타냈다.

"우수한 종자 확보, 고품질화를 통한 수입 쇠고기와의 차별화, 값비싼 화우소비층을 겨냥한 브랜드화는 일본 화우산업을 지탱하는 기본 틀"이라고 츠치교수는 강조했다. 이같은 우수종자확보-고품질화-브랜드화는 고정적인 화우 소비층 유지의 비결이라는 설명이다.

농림수산성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현재 전국 154개 화우브랜드 가운데 전국적 명성을 얻는 브랜드로는 고베비프를 비롯, 마츠자카규·히다규·마에사와규·가고시마규·사가규등을 들 수 있다고 츠치교수는 말했다. 이밖에도 일본의 광역 행정구역인 47군데 도도부현(都道府縣)마다 지방정부가 인정하는 광역브랜드를 비롯, 다양한 브랜드들이 경합을 벌이고 있다.

시마네현에서 만난 현청 농림수산부 축산진흥과 육용우 담당인 이시쿠라 히데키 주간도 "품질 우선 정책이 기본이며 이를 바탕으로 브랜드화가 추진되는데 우리 현에서는 시마네와규(島根和牛)가 공식 브랜드로 육성중"이라 밝혔다.시마네현 마츠에시에서 정육정을 운영하는 기타가키 타카시 사장은 "수입고기도 함께 팔지만 소비자들이 시마네와규를 즐겨 찾는다"며 "값이 수입고기보다 비싸지만 안정성이 인정돼 와규를 선호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화우 소비운동

날로 늘어나는 수입고기에 대항, 화우산업을 지키기 위해 일본에서는 '자기 고장에서 생산된 농산물은 자기 지역에서 소비하자'는 치산치쇼(地産地消) 운동이 활발히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신토불이(身土不二)와 같은 것. 각 지자체와 농협조직 등을 통한 치산치쇼 운동은 학교 급식에도 이어져 자기고장의 브랜드 화우를 사용토록 권장하고 지자체에서는 일정 수준의 보조금을 학교에지급, 값비싼 국산 농산물 사용으로 연결하고 있다.

시마네현 농림수산부 야스마츠 사토시 과장보좌는 "학교에서 급식재료로 쇠고기 뿐만 아니라 시마네현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급식재료로 사용할 경우 지자체에서경비를 보조해 줌으로써 자기고장 농산물 사용을 늘리고 애정도 심어주게 된다"고 밝혔다.

이같은 치산치쇼 운동과 함께 농림수산성이나 문부성 등 정부 관련 부서에서는 방송광고나 홍보책자를 통해 '우리 농산물이 우리 몸에 좋은 이유' 등에 대한지속적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고 시마네현 공무원들은 전했다. 또한 어릴 때부터 학생들의 국산 농산물에 대한 관심을 키워 주기 위해 농촌체험 교육을 실시하는 '식농(食農)교육'도 활성화하는 등 화우지키기 운동을 다양하게벌이고 있다.

정인열기자 oxe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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