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시론-숙지지 않는 지역감정

입력 2002-09-13 00:00:00

오늘은 16대 대선 D-97일이다. 지난 87년 13대 대선 때부터 본격화된 지역주의적 투표가 그 이후 대선 뿐만 아니라 총선 및 지방자치선거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쳐온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다가오는 대선 역시 정도의 차이는 있을 망정 지역주의적 투표가 여전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유권자의 지역주의적 투표, 그리고 이에 따라 나타나는 정당의 지역할거 현상의 원인은 무엇인가?

김대중 대통령은 지난 16대 총선 직후인 4월 17에 발표한 담화문에서 지역감정이 아직도 선거에 영향을 주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라고 언급했다. 이처럼 타지역민에 대한 적대적 태도 및 부정적 편견이라 할 수 있는 지역감정, 특히 그 중에서도 영·호남 지역감정을 흔히 지역주의적 투표의 원인으로 든다.

물론 이러한 지역감정이 아직도 상당히 존재하는 것을 부인할 수 없지만, 여러 조사에서도 나타나듯이 비합리적 지역편견이나 차별의식은 우리 사회에서 점차로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지역감정 외에도 지역주의적 투표의 원인으로 중앙정부로부터의 가치배분을 둘러싼 지역간 갈등과 대립을 들 수 있다. 지역간 경제적 격차, 인사 충원에 있어서의 특정 지역 편중 현상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집권 세력의 의도적 지역차별 정책의 결과인가? 박정희 정권의 경부축 중심의 불균형 발전정책이 호남 및 기타 지역의 소외를 가져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영남인의 입장에서 산업입지적 조건을 들어 영남정권에서 의도적 차별이 없었다고 주장한다면 일관성을 지켜 현 정부의 경제적 자원배분도 지역차별에 의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사실 대구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전국 최하위로 추락한 것은 노태우 정권 말기에서부터 나타난 현상이다. 이렇게 보면 지역출신이 대통령이 된다고 하여 그 지역이 발전한다는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고 할 것이다.

인사의 불공평 또한 지역주의적 투표의 중요한 원인이 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역으로 지역할거적 정치구도가 인사의 불균형을 심화시킨 점을 무시할 수 없다.

개인의 연줄망 자체가 지역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 믿을 만한 사람을 찾다보면 인사의 지역편중은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는 나타날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유권자가 지역주의적 투표를 할 요인이 점차로 약해졌든지 혹은 지역주의적 투표의 합리적 근거가 미약한데도 최근의 지방선거에까지 지역주의적 투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이유는 무엇인가?

결국 유권자의 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들에서 정당간 의미 있는 차이를 찾을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정당간에 이념적 혹은 정책적 차이가 별로 없는 경우, 지역주의적 투표를 할 요인이 약해졌더라도 결과적으로는 유권자의 선택은 지역에 기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71년의 대선에서 당시 공화당은 지역주의적 집권전략을 사용함으로써 이미 존재하는 호남지역의 소외감을 심화시켰고, 이는 호남지역민이 김대중이라는 개인을 자신들과 동일시하게 된 배경이 된다.

유신정권 및 광주민주화운동 과정에서의 김대중씨 탄압은 이러한 동일화 과정을 더욱 강화시켰고, 87년의 대선에서 기존의 민주-반민주의 균열구조가 약화된 가운데 지역적 기반을 중심으로 한 야권분열이 일어남으로써 지역주의적 투표가 한국의 선거정치에서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등장으로 '호남의 한'이 어느 정도 풀린 현재도 지역주의 투표가 성행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지역간 대립과 갈등이 지배하는 사회이어서도 아니고, 우리 유권자들이 심한 지역감정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어서도 아니다.

오히려 원인은 정치권이 유권자에게 지역 외의 다른 기준에 의한 합리적 선택을 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지역주의는 그 자체로서도 누구나 언급하는 우리 사회의 큰 병폐지만 더 큰 문제는 지역주의 쟁점이 수도권과 지방과의 격차 문제를 덮어왔다는 것이다. 지역문제의 핵심은 지방과 지방간이 아니라 수도권과 지방간의 문제이다.

이번 대선 후보들은 무엇보다도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차별성 있는 구체적 대안을 제시하여 유권자들이 합리적 선택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 이는 우리 사회의 병폐인 지역주의를 해소하는 길이기도 하다.

정준표(영남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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