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속의 문화-(10) '우리동네 가꾸기' 운동

입력 2002-09-09 14:23:00

'마을''동네'라는 말은 '도시'보다 정겹다. 옹기종기 사람냄새가 난다. 그러나 회색의 아파트촌과 우중충한 담으로 가려진 우리 도시는 콘크리트 냄새만 가득하다. 칸막이 속에서 하루가 시작하고 하루가 끝난다.

어딜 가나 엇비슷한 외양으로 특성이 없다. 문화와 녹색 공간이 어우러진 동네로 바꾸는 방법은 없을까?삶의 터전과 일상생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마을 가꾸기'운동이 대구에서도 확산되고 있다.

도시개발전략에 의해 일방적으로 설계된 도시가 아니라 '삶터'로서의 도시, 즉 주민이 살기좋은 공간으로 만들기 위한 운동이다. 70년대 초 일본에서 시작된 이래 90년대 국내에서도 본격화됐다. '마을 가꾸기'는 이제 삭막한 대구 도심에서도 풀씨처럼 자라고 있다.

도심 한복판을 약간 비켜선 중구 삼덕동. 삼덕동을 지나다보면 독특한 몇 가지를 발견할 수 있다. 마을국악원 '마고재'와 마을미술관 '빛살 미술관'이 눈길을 끈다. 골목 담벼락엔 각양각색의 벽화가 그려져있고, 동사무소 담을 허문 '쌈지공원'에는 노인들이 여유를 즐긴다.

'마고재'(104평 규모)가 들어선 것은 지난 3월. 음식점을 개조해 국악원으로 꾸미고 3.5평의 사랑채는 따로 만들었다. 옹기 조각을 붙인 솟대가 높은 뜰 한편에는 장독대가 소담스럽다. 품바, 마임, 인형극, 마을 연극 등 마을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연과 무료 국악 강습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지난해 가을 마고재에서 열린 마을잔치에는 250여명의 동네사람들이 걸판진 한마당을 벌이기도 했다.

마고재 옆에는 드라마세트를 연상시키는 목조건물 한채가 눈에 띈다. 일제시대(1936년)에 지어져 쓸모없이 버려졌던 폐가를 100평 규모의 '빛살미술관'으로 개조한 것. 마을 아이들의 그림, 작가들의 미술 작품, 사진 등을 전시한다. 지금도 미술 그룹 '쟁이'의 작품전이 열리고 있다.

삼덕동에는 골목길도 심심하지 않다. 달걀 껍질, 깨진 유리병, 찌그러진 병뚜껑 등 흔한 재료를 이용한 다채로운 벽화가 행인들의 시선을 끈다. 이 마을에는 벽화가 있는 담장만도 20여곳에 이른다.

'인간과 마을' 김경민 대표는 "우리 마을을 문화가 있어 즐겁고 환경친화적인 삶터로 가꾸고 싶다"고 말했다.

마을가꾸기는 놀이터에서도 시작할 수 있다.지난 7월 말 시민단체 '미군기지땅되찾기시민모임'주최 '찾아가는 문화활동-만화야 놀자'가 열린 남구 봉덕3동 '목련놀이터'. 주민들과 가깝고 편한 공간이기 때문에 행사장소로 선정됐다.

밤에는 수십 명의 주민들이 놀이터에서 영화를 봤다. 아이들을 위한 애니메이션을 상영하자 동네 사람들은 "어른들이 보는 영화는 왜 안틀어주냐"고 오히려 항의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40여명의 아이들이 놀이터 담에 벽화를 직접 그리고 '평화의 뜰'이라 이름붙였다.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8, 9월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놀이터 가꾸기 어울마당'을 달서구 신당동 '갈뫼놀이터', 남구 봉덕2동 '개나리놀이터', 서구 평리4동 '신평놀이터'에서 열었다.

놀이터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고 꽃모종을 심은 아이들은 오랜만에 놀이터 주인 행세를 했다. 어린이 노래자랑대회, 주민 퀴즈대회, 무료 한방건강검진 등 아이들과 어른들이 하는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풍물패들과 어우러졌던 마을잔치는 300~400여명의 동네사람들이 모여 떡과 막걸리를 나눠 먹는 등 놀이터는 마을 축제의 중심이 됐다.

미군기지되찾기대구시민모임 김동옥 실장은 "여유 공간이 많지 않은 도심에서 놀이터가 가지는 문화적 잠재력은 크다"면서 "동네 한복판에 있고 조금만 가꾸면 어른 아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공간인 놀이터를 잘 활용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벽을 허물고 이웃과 한 마당을 쓰는 담장허물기도 우리마을 가꾸기의 좋은 방법.지난 96년 대구에서 시작된 '담장 허물기'운동은 현재까지 개인주택 38곳을 비롯 교회, 성당, 학교, 관공서 등 모두 201곳의 담장을 허물었다.

허문 담장의 길이만도 약 10km, 넓이는 4만평에 이른다. 집 앞마당을 개방해 이웃과 정을 나누고 동네 곳곳에 소규모 공원을 만들어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신청자가 너무 많아 고민일 정도로 커다란 호응을 얻고 있다.

2년 전 이웃의 두 집과 함께 담을 허문 김영화(54.수성구 황금2동)씨는 "사람들이 동네 한복판에 작은 공원이 있다고 놀랄 정도"라며 "담이 없으니 이웃들과도 훨씬 가까워졌고 거리가 확 달라져 보인다"라고 자랑한다. 집 근처에 항상 사람이 다니니까 도둑이 감히 침입하지 못하고 범죄가능성도 줄었다는 얘기. 김씨는 같은 동네에 담을 허문 아홉 가구 이웃들과 모임도 만들었다.

'마을가꾸기'는 놀이터 가꾸기부터 내집 담장 허물기, 마을공간 바꾸기 등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다. 마을을 바꾸려는 시도는 도시가 자본의 방식대로 분할되는 것을 거부하고 '문화가 숨쉬는 친환경적인 삶터'로 바꾸어 보려는 작은 움직임들이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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