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말 거상 15인의 경영드라마

입력 2002-09-06 14:41:00

그들은 사욕에 빠져 일본에 주권을 넘겨준 수구지배층이 아니라 철저하게 굶주리고 압제받으며 살아온 시전의 상민.천민들이었다. 그들은 언행을 반드시 지키고 지역을 편가르지 않으며 인재를 바르게 썼다. 그리고 그들은 청빈하고 올곧은 삶을 살았다.

한국 근대 최대의 동양거상 무역왕 최봉준, 실물경제에 혜안을 가진 대물 이용익, 뛰어난 상재와 정치감각의 거인 임상옥. 소설은 이들을 조선의 최강 상인 CEO로 부른다. 근대 다큐문학의 거장 이용선이 동서문화사에서 내놓은 다큐소설 '조선최강상인'전3권에서 이들은 '역발산'.'파천황'.'불세출'로 불린다.

이 소설은 가난한 상민의 아들로 태어나 보부상이 되어 풍상이 휘몰아치던 한말 격동기를 천신만고 헤치며 근대기업과 조선경제를 일구어 나온 조선의 3대 CEO를 비롯, 12인의 거상이 펼치는 대망의 지략과 불굴의 처세 그리고 우국의 경영 드라마이다.

특히 3대 CEO는 천시받던 당시의 상업관을 혁파하고 시대를 앞질러간 선구자로, 일본.중국.러시아의 상술을 무릎 꿇리고 조선상도의 기개를 만방에 떨친 영웅으로 묘사된다.

소설은 천대받던 조선 상민계급 출신 15거상들을 왕조사가 아닌 민중사의 관점에서 서술했다. 단순한 상술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한국인이 공유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인생관과 삶의 가치를 드러낸 필생의 역작이란 평가를 받을만 하다.

이(利)보다는 의(義)를, 이문보다는 사람을 남기는 장사를 해온 그들은 만나면서 IMF 환란과 대기업의 침몰, 정경유착의 폐해와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의 허실이 부끄러울 따름이다.

우리 경제의 오늘은 상도와 절개를 꺾어온 정치가 아니라, 절개를 지키며 상도의 길을 끈기있게 걸어온 조선상인들의 집념과 기질의 유산 때문이리라. 여기서 1960.70년대의 근대화 경제개발과 1980.90년대 경제성장기, 2000년대 IT산업 세계화의 밑바닥에 실존하는 조선 상인들의 끈질긴 상도정신을 읽는다.

패거리를 몰아 권력을 잡고, 국가재정의 기본을 훼절시키는 치부를 하며, 이에 기생하는 천부(賤富)들이 속출하는 요즘 세태를 두고 조선 CEO들은 질타한다. '돈 벌어 제대로 쓰는 법부터 배우라'고….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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