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루사'의 내습으로 도로가 유실되고 전기마저 끊겨 4일째 고립된 성주군 금수면 무학.영천리 12개 마을을 3일 관계 공무원들과 함께 들어갔다.
성주댐의 꼭지점인 넉바우까지는 산사태로 쏟아진 흙을 며칠간 중장비로 치운 덕분에 자동차로 이동할 수 있었다. 200여m쯤올라가자 도로가 유실돼 사람 하나 겨우 다닐만큼 남은 도로턱을 따라 걸어갔다.
도로가 무너진 곳에는 집채만한 바위가 들어올려져 있었고 아스팔트 포장은 찢겨나갔으며 4~5m 움툭 파인 곳에는 허연 화강암암반이 드러나 있었다. 포크레인 2대와 덤프트럭이 연신 흙을 붓고 있으나 역부족.
이곳에서 만난 전종택(63)씨는 "병자년.사라.셀마호 태풍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조금 올라가자 배바위 마을이 나타났다. 도로와 마을을 연결하던 다리는 중간 지점에서 끊겼고 다리 교각에는 위쪽에서 떠내려온 뿌리채뽑힌 나무들이 군데군데 걸려 있었다.
냇물이 많이 줄어 다리를 둥둥 겆고 물을 건너 마을로 들어서자 아낙네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김칠남(71) 할머니는"시집오고 나서 이처럼 비가 많이 온적이 없었다"며 "전기.가스가 없어 불편이 이만저만 아니다"고 공무원들에게 넉두리를 쏟아냈다.
피해를 본 버섯하우스를 찾자 박세열(43)씨는 "정전으로 배양해논 표고버섯 종자가 모두 못쓰게 됐다"며 "앞으로 일이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마을을 나와 윗쪽으로 가니 무흘구곡중 3곡인 배바위가 보였다. 예전에 대가천을 따라 이곳까지 배를 타고 와 메워두었다는 곳.배바위 맞은편은 옹벽이 무너지고 도로가 파여 있었다. 물구비를 치는 곳은 어김없이 도로가 유실되고 없었고 물이 흘러내리는 도랑은 자갈과 토사 투성이었다.
이곳에도 소형 포크레인 1대가 길을 내고 있으나 힘에 겨워 보였다.길 중간에서 만난 이규만(53.영천리)씨 등 주민 10여명은 "군에서 복구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 항의하러 가는 길"이라며"전기.전화가 없는데 여태까지 팽겨쳐 두었다"며 공무원들에게 따졌다.
이씨는 "70~80세 노인이 많은데 난방도 안되고 또 몸이 아파도 응급조치조차 할수 없다"고 했다.마침 이곳을 지나는 화물차를 얻어타고 차량통행이 가능한 챙기마을에 닿았다.
곧바로 주민들의 불만이 쏟아졌다."4일째 전기.전화가 끊겼는데 뭐했느냐"는 등등. 이어 "이동네 김기수(35)씨가 염소.닭 등 자기집 가축들이 떠내려가는데도 포크레인으로 물길을 돌려 동네주민들을 구했다"며 표창을 주라고 추천키도 했다.
"고향이라서 피해가 어느 정도인가 살펴 보러 이곳을 찾았다"는 여창영(63.전 성주경찰서장)씨는 챙기마을 앞 100여m 끊긴 도로를 가리키며 "자연스럽게 흐리는 물길을 웅벽으로 막고 보를 만드는 등 순리에 역행한 결과"라며 도로옆에 있다가 지붕슬라브만 남긴채 흔적없이 사라진 유재상(35)씨 집터를 가르키며 혀를 찼다.
한참을 가니 또 잘려진 도로가 나타났다. 이번에는 1km가 넘는듯 했다. 포그레인 2대가 열심히 도로복구 작업을 하고 있었으나 오늘 중 개통은 불가능해 보였다. 전봇대가 뿌리채 뽑혀 있었고 전화선이 끊긴채 나둥거려져 있었으며 아스팔트는 물길에 위로 부풀려져 흉물스럽게 튀어올랐다.
조금을 가자 무흘구곡 4곡인 선바위가 나타났다. 윗 선바위마을에는 마을앞에 있던 주유소가 간판만 남긴 채 2층 사무실과지하에 묻힌 유류탱크 등이 물길에 쓸려 없어졌다. 주유소 관리인은 "2층에서 잠이 들었는데 이웃주민이 깨워 일어나 밖으로 나온지 10분도 안돼 건물이 물에 힘쓸려 사라졌다"며 아찔했던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곳에 묻혀있던 유류탱크 2개중 큰 것은 2km 아래 도로위에 나둥거려져 있었으며 하나는 성주댐에 쓸려들어갔다고 했다.
성주댐 상류지역에서 김천 경계지점까지 걸어서 왕복 6시간이 걸렸다. 20여km에 이르는 30호선 국도는 10여군데 4~5km가파헤쳐지거나 무너져 있었다. 주택이 무너진 것은 셀 수 없었다. 농작물.가축 피해 등은 아직 정확한 집계조차 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한결같이 특별재해지구로 지정을 바라며 지원을 호소하고 있었다.
피해지역을 둘러본 이창우 성주군수는 "헬기를 지원받아 주민들이 요구한 가축사료 양초.손전등 생필품을 우선 지원하고 전기.통신 및 도로 복구 등에 행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성주.박용우기자 yw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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