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 술 대량구매 승인제 농어촌엔 적용 무리

입력 2002-08-28 15:50:00

지난달부터 실시하고 있는 '주류 실수요자 증명제'가 현실 여건에 맞지않아 판매업자는 물론 일반 소비자들로부터 큰 불만을 사고있다.

유흥주점이나 식당 등이 슈퍼나 할점 등 일반 유통업체에서 불법판매되는 술을 구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세청이 실시하는 이 제도는 일반 소비자가 맥주 500㎖ 기준 36병, 위스키 및 기타 주류 500㎖ 5병, 소주 및 기타 주류 360㎖ 30병 이상 구입할 경우 증빙 서류를 관할 세무서에 제출해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한 것.

일반 할인마트는 매장면적이 1천㎡ 이상인 경우, 농어촌지역의 농.축.수.신협매장은 매장 면적에 관계없이 모두 적용 대상이 된다.따라서 주민들은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경조사를 비롯 각종 행사를 위해 술을 한꺼번에 많이 사려면 미리 청첩장, 부고장 등의 증빙서류를 세무서에 내야 한다.

그러나 이같은 내용이 제대로 홍보가 되지 않아 제도자체를 모르는 농어촌 주민들이 많은데다 주민들이 승인을 받으러 세무서를 찾아가야 하는 불편이 있고 행사가 많은 주말 오후와 휴일에는 세무서의 승인을 받기도 쉽지않다.

안동시 남선면 박모(63)씨는 "친지들과의 회식 자리를 위해 맥주 한 상자를 구입했는데 금세 떨어져 다시 사러갔으나세무서의 주류실수요자 증명서를 받아오라고 했다"며 "말도 안되는 제도 때문에 소비자만 골탕먹는다"고 말했다.

지난 주말 마을 굿을 치른 한 어촌 주민들은 뒤풀이 술을 나누기 위해 농협마트에서 맥주 3상자를 구입하려 했으나 역시 증명서를 요구받았다며 "절차가 번거로운데다 직원들이 모두 퇴근한 주말 오후에 어디에서 증명서를 발급받느냐"며"술을 어떤 용도로 쓰는지 뻔히 알면서도 규정만 따진다"고 반발했다.

유통업체 한 관계자는 "장례, 결혼식에 쓸 술도 세무서에 신고해서 사야 하느냐며 따지는 주민들이 많아 곤혹스럽다"며 "주류 실수요자증명 적용대상을 농어촌의 유통업체까지 획일적으로 포함한데 따른 부작용"이라고 말했다.

농어촌 주민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일부 대형 할인점들은 주민들의 용도가 명확하고 매장에서 직접 구입하는 경우 증명서 없이 2~3회에 나눠 요구량만큼 주거나 구입자를 허위로 내세워 판매 물량을 분산하는 편법을 쓰고 있다.

이 제도 시행 이후 안동세무서가 두달여동안 관할 안동시와 영양.청송군 지역 소비자에 발급해 준 실수요자증명은60건에 불과해 실적도 미미한 편.

한 대형할인점의 주류판매 담당자는 "유흥업소의 탈세를 막기위해 이 제도가 시행된 것 같은데 농어촌 지역에서는무리가 있다"며 "일부 유흥업주들의 탈세 막기에 일손 바쁜 농어촌 주민들만 번거롭기 짝이 없다"고 말했다.

안동.정경구 합천.정광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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