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 수해에 '돈 가뭄' 덮쳐

입력 2002-08-22 14:35:00

추석을 한달 앞둔 요즘 농촌지역 주민들은 수해로 농산물 품질저하에 따른 가격하락으로 소득이 크게 떨어진 반면 자녀 학자금, 영농비상환등 자금수요는 늘어나 수해에 이어 극심한 돈가뭄의 이중고를 겪고 있다.

지긋지긋한 비로 수확시기를 놓친 붉은고추는 대부분 떨어지거나 썩어 수확량 감소에다 값도 지난해 보다 50%수준으로 하락했고 과일도 당도가 떨어지고 기온상승으로 과일껍질이 갈라지는 열과현상까지 생겨 상품성이 크게 떨어졌다.

한달전 15kg 사과 한상자가 5만원 이상에 거래됐으나 최근 4만원 이하로, 캠벨포도는 10kg 기준 1만8천원이 8∼9천원대로 하락하는 등 가격인하로 소득이 지난해 절반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농민 박모(52.군위군 의흥면)씨는 "수입이 지난해 절반도 안되는데다 대학생2명의 등록금이 한꺼번에 나와 농협대출로 겨우 해결했는데 추석을 앞두고 돈쓸 일은 많아져 걱정이다"고 했다.

군위 의흥농협 정덕수(43)과장은 "농산물 값이 전반적으로 하락한데다 수확량도 크게 감소, 농촌은 최악 돈 가뭄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영주시 단산면 병산리 권기석(49)씨도 "포도밭과 사과원이 지난 집중호우때 침수돼 내다 팔 물건이 없게 됐는데 대학다니는 아들 등록금 마련을 위해 다시 대출을 받아야 할 처지"라 한숨지었다.

13일동안 내린 비로 출하직전 수박이 밭에서 모두 썩어 버린 산(山)수박 단지로 유명한 봉화군 재산면 동면 일대 농민들의 처지는 더욱 딱하다.

수박 전업농인 최원우씨는 "종자대와 비닐, 농약대 등 3천만원을 빚내 6천400평에 수박을 재배했으나 손에 쥔 돈은 한푼도 없다"며 "마을사람 대부분이 농협에 수박농사 자금을 빌릴때 맞보증을 한탓에 모두 폐농지경"이라 낙담했다.

영양지역도 주소득 작물인 고추값이 평년의 60%수준인 2천500∼3천원선에 머무는데다 병충해가 극성, 생산량 감소가 농가 수입하락으로 이어져 돈가뭄이 심각한 상황이다.

안동 길안면 사과재배농민들도 이번 비에 여름사과 농사를 모두 망쳐 이상호(54.길안면 천지리)씨는 "여름사과의 절반이상이 떨어졌고 품질이 떨어져 내다 팔 것이 없다"고 걱정했다.

농가의 외상값 중간정산을 기다리던 농자재상들은 운영자금이 고갈, 고금리 사채를 찾아 전전하고 재래시장 농산물 상인들은 상가 임대료조차 못내는 실정이다.

영주 장수농공단지와 안동 풍산 농공단지 입주업체 상당수도 경기침체에 따른 영업실적부진으로 돈가뭄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안동농협 관계자는 "최근 농민수입이 줄어들면서 농가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지역 도.소매업과 제조업이 극심한 불황으로 대출문의가 폭증하고 있다"고 전했다.

2천여평 복숭아 농사를 지은 이중기(45.영천시 매산동)씨 역시 "올해 계속 내린 비로 만생종 복숭아가 수확을 앞두고 대부분 떨어져 예년 경우 15kg들이 600~700상자 정도 수확했으나 올해는 70상자만 건져 추석자금은 물론 농자금 대출이자를 갚기도 막막하다"고 걱정했다.

김진만.정창구.엄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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