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경제학은 있어도 한국경제학은 없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국학분야에서 우리나라 경제학의 몰주체성을 지적하면서 나온 것인데, 이 말에는 막강한 위세를 자랑하는 경제학에 대한 인문학의 부러움과 시샘이 깔려 있다 하더라도 우리 경제학의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그냥 한귀로 흘려버릴 일은 아니다.
경제전문가가 아니라서 그 진위를 정확히 따질 수는 없지만 국학계의 지적은 대강 이런 뜻으로 이해되고 수긍이 간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되고 유익한 경제학이라면 전통과 현재의 삶살이와 문화양식의 바탕위에 자연 및 인적자원과 현재의 상황이 총체적으로 고려되고, 거기에 세계경제의 이론이나 흐름을 적용해 내일을 전망하고 오늘을 다져 나가야 할 것인데 우리의 경제학은 그렇지 않다는 것.
우리의 경제학은 거꾸로 수입해 온 경제대국 미국이나 일본의 이론에 맞춰 우리의 실정을 논하고 전략을 수립하기 때문에 현실인식을 오도케하고 실상과 맞지않는 그릇된 정책을 펴게 한다는 것이다.
◈한국경제학은 없다
그래서 우리의 경제학은 표면적으로 나타난 경제대국 위주의 세계경제 흐름을 장황하게 분석하고 나열한 후 그들의 지침대로 자본주의 시장원리에 따라 구조조정을 강화해야 한다거나 특정분야 산업의 경쟁력을 더 높여야 한다는 상식적 수준의 결론을 내리는 것이 고작이란 것이다.
국학계의 이 같은 지적이 맞다면 요즘 문제가 되고있는 마늘 수입개방분쟁이 그 구체적 사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우선 외교통상부와 농림수산부의 책임 떠 넘기기가 그렇다. 국학계의 지적대로 '한국경제학'이 제대로 마련돼 있었더라면 이처럼 한심한 일은 빚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마늘수입시비는 2000년도에 이미 한차례 불거진 사안이었다. 이 때에도 전국적으로 대규모 반대시위가 일어났으며, 마늘 주산지인 의성과 군위지역 재배농민들은 마늘밭을 밭떼기로 뒤엎고, 이를 막기위해 군수가 트랙터 앞에 드러눕는 등 소동이 있었다.
그런데도 마늘수입개방 시비가 재연된 것은 외교통상부와 농림수산부가 마늘농사를 경제활동의 한 영역으로, 재배농민을 경제활동의 주체로 여기지 않고 경시해 왔기 때문이다.
만약 두 주무부서가 마늘농사를 자동차와 같은 다른 주요산업처럼 경제활동의 한 주체로 여기고 어려운 사정의 농가를 조금이라도 걱정했더라면 3년뒤 전면 개방키로 한 중국과의 협약을 숨길 필요가 없었을 것이고, 세이프가드 연장기간동안이나마 농민들과 함께 대응책 마련에 나섰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마늘분쟁 바로 직전에 미국은 지난해 도하라운드 협상에서 저소득 국가들과 한 농업보조금 감축약속을 깨고 올해부터 10년간 1천900억달러나 되는 엄청난 농업지원 보조금을 농가에 지불키로 확정했으며, 유럽연합(EU)도 최근 매년 미국의 2배가 넘는 보조금 지급을 낮춰야 한다는 세계적 압력을 외면한 채 1천억달러 수준의 지금까지의 농업지원정책을 그대로 유지키로 결정했다.
◈농민들만 희생
현재 가격보장 감세혜택 등 농업지원보조금이 총농가소득서 차지하는 비중이 스위스 70%, 노르웨이 65%, 일본 60%, 유럽연합 35%, 미국 25% 등으로 선진국이 저소득국가보다 훨씬 높다.
이 같은 상황에서 미국의 보조금 대폭증액과 유럽연합의 동결은 자국의 농산물시장마저 선진국의 농산물에 빼앗기고 있는 저소득 농업국가들의 사정을 더욱 어렵게 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도 이들 개도국들보다 형편이 낫다고는 하나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선진국들이 밖으론 자유무역을 부르짖으면서 안으론 자국농산물 보호에 온갖 술책을 다 부리고 있는 마당에 우리만이 농민을 희생시키기까지 하면서 보조금을 줄이고 감산을 해야하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경제전문가들은 이번 마늘수입개방파문에서 처럼 중국의 보복을 먼저 걱정하는가 하면 농민시위를 시장경제의 원칙을 깨는 집단이기주의로만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힘없는 농민들도 경제활동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보다 합리적이고 적극적인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2년뒤인 2004년에는 더 골치아픈 쌀개방협상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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