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고 세상읽기-동아시아의 유교적 전통

입력 2002-08-20 15:17:00

이번 여름방학 동안 학술회의에 참석하러 중국과 일본을 방문하였다. 동아시아 3국은 서로 다른 점들이 있음에도 기본적으로 유교문화권이라는 공통점을 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 유교문화가 얼마나 공통적이고 이질적인가 하는 점은 아직 학문적 연구가 부족한 상태에 있다.유교의 속성상 자칫하면 교조적으로 되기 싶고, 특히 한국은 세계에 유례 없는 유교국가로서 중국유교, 일본유교에 관심을 가질 여유를 갖지 못하여 왔다.

나는 유학자가 아니지만 동아시아의 문화와 사상을 이해하려면 유교전통을 바르게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중국과 일본에서 유교적 전통의 현존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북경에서 공자묘(孔子廟)와 국자감(國子監)을 찾았다. 역시 품이 넓은 공간에 여러 편액(偏額)들이 걸려 있고, 제기(祭器)와 악기(樂器)들로 그득했다. 관광객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각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고, 영어로 된 안내책자도 만들어 팔고 있다.

뒤편 건물은 청소년 도서관으로 사용하고 있어 들어가 보니 학생들이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알다시피 중국은 유교 전통이 근대화에 지장이 된다고 지식인들로부터 비판받고, 근년에는 문화혁명에 의하여 호된 시련을 겪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요즈음에는 다시 유교의 가치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장려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은 전통적으로 유교보다도 불교와 신도의 영향이 크다고 지적되고 있으나, 이번에 동경의 유시마(湯島) 세이도(聖堂)를 돌아보고, 오사카의 유교교육기관 가이도쿠도(懷德堂)의 유지(蹟趾)를 찾아보고 일본 역시 유교적 전통이 만만치않은나라임을 확인하였다.

라이샤워 교수가 모든 일본인은 유교적이라고 한 말이 전혀 잘못된 지적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유시마세이도 역시 방문자에게 항상 개방하고 있는데, 사찰이나 신사(神社)에서 처럼 에마(繪馬)라는 판자에 대학입시에 성공하기를 기원하는'기복(祈福)종교화'가 이루어진 것을 보고 놀랐다.

오사카의 가이도쿠도는 일본 유교가 조선처럼 과거시험 보아 출세하는 것이 아니라 평민들, 상업인들에게 유교윤리를 교육시켜 산업화의 기초를 이룬 곳으로 상징적인 곳이다. 지금은 일본생명보험회사 건물이 서서 그 유적지 비석만 서 있지만, 이것이 일본유교의 성취 아닌가 하는 감상도 없지 않았다.

나는 평소 성균관대학교에 볼 일이 있어 서울의 명륜동에 있는 성균관 대성전(大成殿) 앞을 비교적 자주 지나다닌다.오늘날 한국의 성균관은 대학교의 일부인 것 같이 보이고 일반인이나 외국인들이 쉽게 접근하여 관람할 수 없는 형편으로 폐쇄되어 있다.

근년에 유교의 종교화를 선언하기도 하였는데, 유교가 종교화하려면 무엇보다도 가시적 조형예술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나는 공자상(孔子像)에 대하여 관심이 많은데, 한.중.일 3국 중에 한국이 공자상에 가장 빈약한 것 같이 보인다.

동경의 세이도 안에 대만정부에서 세워준 공자상 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은 조형예술의 공자상이 있음은 명심해야 할 일이다. 어떤 종교이든 문자 중심의 성상파괴주의(Iconoclasm)로 흐를 때는 불건전해 질 수밖에 없다.

어떤 종교를 신봉하든 동아시아의 문화와 학문을 사랑한다면 유교에 기초를 둔 전통의 재해석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이제 21세기의 세계에서 서양인들은 동아시아로부터 새로운 사상과 가치를 배우려고 귀를 기울이고 있다.

물질위주의 비인간화된문명의 탈선을 교정하고 진정한 문명과 사상을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 동아시아인들은 무엇인가 보여주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계속 서양모방, 종속적 학문과 사상에 급급할 수 없다. 동아시아 전통의 재해석 속에서 세계를 향한 새로운 활력을 찾아야 한다.

서울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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