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호우로 수박이 다 물러 터졌습니다. 수확을 포기해버린 농민들은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어 말 걸기도 눈치보이고, 초상집같은 분위기입니다".
예년 같으면 한창 수확의 기쁨에 노동요가 절로 나왔던 봉화군 재산면 수박밭에는 요즘 빚갚고 살아갈 걱정에 긴 한숨만 들려올 뿐이다. 실의에 빠진 대부분 농민들은 삼삼오오 모여 쓴 소주잔을 기울이며 하늘을 원망하며 절망에 잠겨있다.
해발 450m 이상 준고랭지에 목초액과 깻묵을 발효시켜 얻은 추출물을 이용, 과육이 단단하고 당도가 높은 수박을 생산하기로 유명한 봉화군 재산수박.
올해 272농가에서 271㏊의 수박을 재배해 1만2천여t을 생산, 100억원의 소득을 올릴 것으로 예상했다. 재산면사무소 배선희 산업담당은 "작년엔 작황이 좋아 비닐 1롤(400평)당 최고 800만원을 받았다"며 "90일 농사로 평균 300만~400만원 정도를 버는 고소득작목이라고 생각해 올해는 재배면적도 20㏊이상 늘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하늘이 외면했다. 본격 출하기(8월초~중순)인 지난 5~17일까지 계속 내린 비로 습해와 일조시간 절대 부족으로 거의 폐농할 지경에 이르렀다.
"16년간 수박농사를 지었지만 올해처럼 폐농하기는 처음입니다. 5천200여평 수박농사를 지어 손에 쥔 돈은 한푼도 없어요.
얼마전 트럭에 수박을 실어 서울로 판매하러 갔는데 상품성이 떨어진다며 되가져 가라더군요. 쓰레기 처리비가 아까워 되가져오지도 못하고, 아직 운반비 35만원도 못줬어요". 농민 정운수(50)씨는 울상이 됐다.
일부 농가의 경우 약삭빠른 상인들이 수확 전에 밭떼기로 계약금 일부를 주고간 뒤 아무런 말도 없이 오지도 않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폐농 위기감은 북부지역 고추밭에도 몰아닥쳤다. 고추 병피해가 확산된데다 건고추 가격도 하락세를 면치못하자 농가들이 고추를 뿌리째 뽑아버린 것.
이들 지역의 호우기간 일조량은 예년의 10%에 불과한 5시간으로 무름병·열과(열매 껍질이 터지는 현상)와 담배·파방나방 등 병해충 피해가 극심하다.
또 수분과다로 이상생장을 보였던 뿌리가 썩어들면서 줄기째 말라들고, 역병·탄저병마저 확산돼 생육부진에 따른 품질저하와 수확량 감소가 불가피하다.
안동 일직·도산면 등지의 고추밭에는 물러터지거나 썩어 떨어진 붉은고추에서 풍기는 메운 향 때문에 그나마 건강한 고추따기 작업조차 어려울 정도다.
김천 포도의 경우 올해 전체 생산량의 80%가 열과로 농민들을 한숨짓게 하고 있다. 가격은 말할 것도 없다. 지난해 5㎏당 1만2천원에서 올해는 750원으로 떨어졌다. 물론 식품공장 가공용으로 팔린다. 정품 가격은 올랐지만 팔 물건이 없다.
김천농협 이동희 조합장은 "열과피해가 예상 외로 심각해 포도농가의 사정이 절박하다"며 "농작물 피해도 재해보상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상주지역 인삼 재배농들도 애태우기는 마찬가지. 올 들어 지나치게 많이 내린 봄비로 봄비로 잎과 줄기가 연해진 탓에 초여름에나 발생하는 역병이 때이르게 발생했고 5, 6월 폭염으로 병충해 발생도 더 심해졌다는 것. 특히 1~3년차인 전연근의 경우 황(黃)병이 번져 애를 태우고 있다.
인삼밭 3천평을 경작하는 장순철(50·상주 내서면)씨는 "최근 2, 3년새 몰아닥친 이상기후로 인삼농사에 타격이 크다"며 "특히 올해엔 생장이 부진한데다 병충해마저 기승을 부려 수확량이 10~15% 정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강석옥·박동식·김진만·엄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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