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날 도회에서의 가난했던 유학 시절, 두고 떠나 온 고향을 그리는 마음은 내 고단한 삶을 지켜주던 유일한 위안이었다.
자정을 훌쩍 넘기고 느지막이 잠자리에 들어도 정신은 언제나 가을 별빛같이 또렷해 왔었고, 눈만 감으면 확대경처럼 선연히 떠오르던 고향의 정경이 하나의 간절한 기다림의 모습으로 다가서곤 했었다.
동구 밖 길모퉁이에 하늘을 떠받치듯버티고 선 아름드리 정자나무며 학교 가는 길에 온통 연분홍 빛깔로 넘실대던 코스모스, 아이들이 제 집처럼 뛰고 놀던 뒷동산, 이 모든 것들은 얼마나 어린 마음을 그리움으로 애태우게 했던가.
그 갖가지 추억들이 상금도 안개 속 풍경처럼 애련하다. 아무런 꾸밈도 없던 넉넉한 자연의 품에 안겨 부침개 한 접시, 떡국 한 그릇이라도 담을 넘겨 주고받던 따뜻한 마음들은 고향만이 보여줄 수 있던 그 시절의 정취가 아니던가.
나는 그 후 가슴 속 깊이 간직해 왔던 고향을 그만 도둑맞고 말았다. 수십 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찾아본 고향은 도무지 내 기억 가운데 자리한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마음 푸근히 기댈 공간은 그곳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았다.
깔끔하게 포장이 잘 된 시멘트 길 위로 소달구지 대신 자동차들이 질주하고, 워낭소리가 사라진 논밭에선 경운기의 요란스런탈탈거림이 마구 귀를 송신케 해댔다. 사람들은 모두들 제각기 자신의 일에 분주하여 나무그늘 밑에 앉아 머리 맞대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 도란도란 나눌 작은 여유조차 잃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그 구수한 쇠똥냄새를 맡을 수 없게 되었고 장닭의 느리고 긴 울음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다.이것은 어쩌면 흘러간 지난 세월 동안 그만큼 내 정서가 빈한해진 탓이기도 하리라.
현대인들은 지금 누구 없이 자신이 태어난 고향은 있지만 지친 마음 푸근히 누일 정신적 고향은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그런 까닭에 어쩌면 우리 모두가 정서 불안 장애자들이며 오늘 너와 나의 삶은 영원한 타향살이인지도 모르겠다.
각박한 일상에서 한껏 찌들고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고 정(情)에의 간절한 목마름을 적셔 줄 고향, 어머니의 따뜻한품속 같은 그 공간이 그립다. 지난 시절의 구수한 쇠똥냄새며 정겨운 닭울음소리가 오늘따라 몹시도 그립다.
수필가 곽흥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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