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 해상 탈북 김만철씨

입력 2002-08-20 00:00:00

지난 87년 소형 선박 '청진호'를 타고 일가족 10명과 함께 탈북한 김만철(62.사진)씨는 19일 서해상을 통해 탈북한 순종식(70)씨 세 가족 21명의 소식을 듣고 남다른 감회를 보였다.

정착과정에서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날리고 방황한 끝에 4년전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 신현리의 한 농막에 터를 잡았다는 김씨 부부는 "참 잘왔다. 아마도 죽을 각오로 떠났을 것"이라며 15년전을 떠올렸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순씨 가족 탈북 소식을 들었는지.

▲오늘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알았다. 오전 9시, 낮 12시 뉴스를 봤다. 참 잘왔다고 생각한다. 순씨가 고향이 논산이라는데 우리 부친 고향도 논산이다. 묘한 인연이다. 또 출발지 평북 선천군은 내가 잘 아는 곳이다.

-15년전 탈북상황이 떠오를텐데.

▲그 때는 탈북자가 거의 없었다. 지금과는 상황이 좀 다르지만 목숨을 걸고 내려오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마 순씨 가족도 목숨을 걸지않았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탈북 일정이 오래 걸리지 않아 다행이다. 그 때 우리는 닷새나 걸려 일본에 도착할수 있었다. 정말 죽는 줄 알았다.

-순씨 가족에게 하고 싶은 말은.

▲새 생활이 시작될텐데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고 적응을 잘했으면 한다. 탈북자들을 처음 만나보면 남한에 대한 굉장한 환상을 갖고 있는 잘못이 있다. 여기선 열심히 일하는 만큼 벌고 조금만 일하면 굶는 일은 없지 않으냐.

-탈북자가 점차 늘어나는 추세인데.

▲우리 가족이 탈북할 당시에는 거의 없다 이듬해부터 늘어나기 시작했다. 고향을 버리는 일이 어디 쉬운 일인가. 아마도 북의 개방.개혁정책이 시작되면 (북한)사람들도 열심히 일하게 될테고 그러면 형편이 나아져 좀 줄지 않을까 생각한다.

-언제 광주에 정착했나.

▲아시다시피 사기를 당한 뒤 한때 경남 남해에 기도원을 세우기도 했다. 4년전 아는 사람 소개로 이 곳에 들어와 사는데 보시다시피 주택이 아닌 농막이다. 벌이는 마땅치 않지만 먹고 사는데 불편이 없다.

-당시 탈북했던 가족들은.

▲탈북 당시 11명이던 가족이 25명으로 불었다. 큰 아들 광규(37.한국토지공사 근무)는 아이가 3명이고 막내아들 광호(26)도 지난 2월 UCLA를 졸업했다. 광순(28).광옥(31)이도 결혼해 아이낳고 잘 살고 있다. 순씨 가족이 21명이라고 하는데, 나는 더 많다(웃음).

김씨 부부는 일반주택이 아닌 컨테이너 2개를 이어 붙이고 천막을 씌운 산기슭 농막에서 살고 있었다. 농막 진입로는 이름도 없는 비포장 산길이어서 입구조차 찾기 쉽지 않은 곳이다.

흰 머리카락을 제외하곤 건강하고 밝은 표정의 이들 부부는 이 곳에서 밭을 일구고 양봉과 양계를 하면서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고 있다.

김씨 일가족은 지난 87년 1월 50t급 소형 선박을 타고 함북 청진을 출발했으나 엔진고장으로 표류하다 5일만에 일본 후쿠이(福井)현 쓰루가(敦賀)항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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