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老人 학대

입력 2002-08-13 00:00:00

어머니의 밥을 축낸다고 딸을 땅 속에 묻으러 간 어떤 효자(孝子)가 뜻밖에 그 땅 속에서 금종(金鐘)을 얻었다는 옛얘기가 있다. 효성(孝誠)을 앞세운 살신이나 헌신은 우리 역사와 민담의 주된 소재로 등장하지만, 전통적인 효관(孝觀)은 희생을 수반하게 마련이었다.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 공양미 300석에 팔린 고전 속의 심청(沈淸)은 유교사회가 미화한 살신(殺身) 효성의 대표적인 경우다. 그 심청은 마침내 용왕의 도움을 받고 다시 살아나 백성들이 우러러 보는 왕후(王后)가 되지 않았던가.

▲그러나 세상은 그 전통적인 미덕이었던 효도가 땅에 떨어지는 등 너무나 삭막해져 가고 있다. 1980년대부터 급격한 핵가족화 경향과 노인 부양 의식 약화, 노인의 역할 상실에 따른 사회적 소외감이 날로 심각해져 노인 문제는 이제 노인 스스로나 가족의 힘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고령화 사회로 치닫는 현실을 생각하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최근 한 병원 관계자가 '칠순이 넘은 할머니가 뇌졸중으로 입원 중인데 찾아오는 자식이 없다'며 언론사에 '경종을 울려 달라'고 제보했다는 기사가 보인다. 슬하에 1남6녀나 두었지만 뇌경색으로 6개월째 병원에 방치된 채 자식들 중 누구 한 사람 데려가겠다고 나서지 않기 때문이라 한다.

병원비 얘기가 나오자 이따금 들르던 셋째딸마저 발길을 끊어 급기야 병원측이 14통이나 되는 내용 증명을 보내기까지 했지만 전화하는 가족마저 없어져 버렸다는 사연이다.

▲반신불수의 이 할머니는 아들 집에 돌아가기를 원하지만 사정은 전혀 다르다. 딸들은 물론 하나뿐인 아들마저 '어머니가 매사에 신뢰성이 없으며 거짓말 등으로 환멸을 느끼고 있다'면서 병원에 내용 증명과 함께 7남매가 분담할 병원비에 해당하는 20만원을 전신환으로 보냈다 한다.

며느리도 남매 사이의 빚 문제로 사실상 이혼한 상태라며 남편 가족 문제라고 일축하고 있는 모양이다. 아무리 말 못할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이쯤 되면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노인들은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는 분들이다. 오히려 그들은 많은 의료비를 쓸 뿐 아니라 젊은 사람들의 도움을 필요로 하면서 노동 생산성을 저해하기도 한다. 자본이 전횡하는 시대에 그들은 도무지 자본의 논리에 어울리지 않는 구차한 사회적 짐에 불과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굳이 전통적인 효관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우리에게는 그들을 존중하고 돌볼 의무가 있다. 늙고 병들고 냄새 나는 노인들을 국가적 차원에서든, 개인의 차원에서든 진심으로 공경하고 돌보는 분위기가 아쉽기만 한 세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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