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아내를 깜짝 놀래줄 심산으로 그간 쭉 길러왔던 콧수염을 깨끗이 면도한다. 드러난 맨살을 보고 아내가 깔깔댈줄 알았는데 왠일인지 눈도 깜짝하지 않는다. 한술 더 떠 "당신에겐 애당초 콧수염 따위는 없지 않느냐"고 말한다.
아내뿐 아니라 친구들, 회사 동료들, 심지어 단골 담배가게 할아버지까지도 그의 콧수염이 "원래 없었다"고 말하자 남편의 당혹감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얼마 후엔 그의 아버지는 물론 절친한 친구, 부부 사이도 모두 모두 '없었던 일'로 돼버리자 그는 급기야 정신분열의 세계로 빠져들고만다.
▲프랑스 문단에서 기발하기로 소문난 엠마누엘 카레르의 '콧수염'이라는 소설의 줄거리다. 남성은 성징(性徵)을 보통 턱수염, 콧수염, 구렛나루로 나타내는데 콧수염만큼은 자아(自我)의 표현에 가깝다. 그래서 남성의 콧수염에 대한 애착은 여성의 화장(化粧)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꼼꼼하게 콧수염을 손질하는 남자의 행동은 거의 예술이다. 20세기 초만 해도 서양에서는 이발소에서 주로 수염을 손질했는데 오죽했으면 '이발소에서 사용된 남성들의 모든 노력과 시간을 단 하루에 모을 수 있다면 파나마 운하도 4일만에 건설될 수 있다'는 질레트의 광고가 히트를 칠 정도였다.
▲이런 콧수염이 점차 사라진 것은 면도기의 보급 덕분이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콧수염은 남성에게는 무언의 대변인으로 남아있다.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의 콧수염에는 시퍼런 정의(正義)가 서려있고 진한 눈썹에 콧수염을 기른 사담 후세인은 이라크 사내의 독선적인 외모를 풍긴다.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가 지난달 열린 브리티시오픈에서 콧수염을 기르고 연습라운딩을 한 것은 결연한 의지의 표현이다. 한편 70년대 초 젊음의 파격과 재기가 번뜩이는 음악으로 돌풍을 일으킨 가수 이장희도 콧수염을 길렀지만 어른들로부터 "어린 놈이 건방지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폴란드 자유노조 창시자 레흐 바웬사(58)가 트레이드 마크인 콧수염을 말끔히 깎았으나 이내 후회하고 말았다고 BBC방송이 7일 보도했다. 바웬사씨의 콧수염은 1980년 그단스크 조선소 파업을 주도하면서 저항의 상징으로 부각됐다.
그는 대통령이 된 뒤에도 턱수염은 깎았지만 코밑의 수염은 그대로 나뒀는데 최근 콧수염을 밀면 100만달러를 주겠다는 미국 면도기 회사의 제안도 거부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콧수염을 버린 것은 과연 무더운 날씨에 염증이 생긴 때문일까. 그는 또 하나의 메시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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