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파일 이곳-기호화 하는 인터넷 언어들-사이버 언어'아햏햏'을

입력 2002-08-08 14:15:00

"아햏햏이라는 낱말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성미 급한 독자들은 '매일신문이 제작 실수를 했구나'라고 반응할지 모른다. 그러나 '아햏햏'은 오·탈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말 사전에 오른 이른바 검증된 낱말도 아니고 교양 있는 서울 사람들이 두루 쓰는 표준말은 더더구나 아니다.

글자의 생김새도 낯설고 어떻게 발음해야 좋을지 알 수 없는 '아햏햏'은 요즘 인터넷에 급속하게 퍼지고 있는 낱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햏햏'은 아직 그 뜻을 명쾌하게 정의할 수 없다.

▧ 어디에 쓰는가

'아햏햏'이라는 낱말을 자주 쓰는 사람들에게 물어도 "아햏햏은 아햏햏일뿐"이라는 대답이 고작이다. 그럼에도 각종 인터넷 게시판이나 유머란에는 '아햏햏'이 자주 출몰하고(?) 있다. 정의하기 어렵지만 사이버 공간에 떠도는 '아햏햏'이라는 낱말을 종합해보면 몇 가지 특징을 지닌다.

우선 이 말은 엽기적인 상황이나 어이없는 상황, 또 왠지 조롱하고 싶은 상대의 이름 앞에, 재미있을 때 등에 쓰인다. 지금까지 '엽기적이다'는 말로 대부분의 감탄사나 형용사를 대신했던 네티즌들이 이제 '아햏햏'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 아햏햏의 함의

네티즌들은 이해하기 힘들거나 정의하기 힘든 모든 것들에 대해 '아햏햏'이라고 대꾸한다. 정의할 수 없는 이 말이네티즌들의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우선 '아햏햏'의 '해ㅎ자'들은 인터넷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싸움을 한다.

그러나 그 싸움 방식이 독특하다.

상대방은 열심히 자기 논리를 펴지만 이들은 그저 '아햏햏' 혹은 '방법한다' 는 등 대화와 관계없는, 게다가 별 의미도 없는 말을 늘어놓는다. 말하자면 이들은 대화나 설득, 토론을 거부하는 것이다. 말투는 선사(禪師)를 흉내낸 듯 '하오'체를 쓴다.

간단히 말해 '해ㅎ자'들은 PC통신과 인터넷의 등장 이후 전면에 부상하기 시작한 한국사회의 토론 문화를 거부한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해ㅎ자'들의 싸움방식은 언어파괴요 소통거부라 할 만하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요즘 인터넷은 소음으로 가득 차 있다. 찾고자 하는 알짜 정보는 넘치는 쓰레기와 소음에 가려 어디에 숨었는지조차 알기 힘든 게 현실이다. 게시판마다 네티즌들은 열심히 자기 주장을 늘어놓지만 대부분 논리도 약하고 근거도 약하다. 한마디로 작금의 인터넷은 익명성을 바탕으로 무차별 난도질과 욕설, 소모적인 논쟁이 넘친다는 것이다.

'아햏햏'의 '해ㅎ자'들은 진정한 소통이 방해받는 이 소음을 거부한다.다시 말해 이들은 진정한 소통을 원하는 집단이라는 말이 된다. 그래서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말'이 아니라 '행위'인 것이다.

▧ 시작과 발달

'아햏햏'은 인터넷 디지털 카메라 정보 제공 사이트인 디씨인사이드(www.dcinside.co.kr)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이 지난 2월쯤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오타를 친 것이 다른 사람들의 흥미를 끌었고 급속하게 퍼져나가기 시작했다는 것이 디씨인사이드측의 설명이다.

이 말이 급속도로 번질 수 있었던 것은 이 사이트의 엽기 갤러리에 네티즌들이 디지털 카메라로 인물과 동물 사진, 갖가지 사물을 패러디한 사진을실어 널리 퍼뜨렸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된다.

'아햏햏'의 인기는 상상 이상이다. 일부 마니아들은 회비를 걷어 '아햏햏' 글자가 도안된 티셔츠를 제작, 공동 구매하기도 했다.이들이 패러디한 사진이나 글은 의미 없는 우스개라기보다 우리 사회의 어둡거나 뒤틀린 곳에 주목하고 있는 듯하다. 물론 '아햏햏'의 급속한 확산에대한 우려와 비판은 굳이 특정인을 들먹이고 말 것도 없을 만큼 이미 온 ·오프라인에 차고 넘친다.

▧ 자칭 '폐인'

'아햏햏'의 '해ㅎ자'들은 스스로 '폐인'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요상한 사진을 올리고 시답잖은 말을 주고받고 그 말에 리플을 달고 킬킬킬 웃는다. 사람들은 그런 행태를 '폐인'이라 지칭하기 일쑤고 '아햏햏'의 '해ㅎ자'들은 그 말을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그러나 이들 '해ㅎ자'들이 인식하는 폐인은 비정상적인 사회인, 사회구성원으로의 편입에 실패한 사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차라리 선사(禪師) 혹은 군자(君子)에 가깝다. 이들은 스스로 나름대로 깨친 사람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듯 하다.

따라서 이들에게 '폐인' '해ㅎ자' 혹은 '선사'는 비슷한 의미가 된다. 실제로 이들의 거침없고 개방적인 태도는 자기 표현이 분명한 나이를 고려하더라도 상당한 수준임을 짐작케 한다.

말하기 좋아하는 네티즌들이나 스스로 '아햏햏'의 '폐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아햏햏'를 왜곡하는 기사라고 일침을 놓을지 모른다.또 논리적이지 못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을 백안시하는 기성세대들은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일축할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갖가지 비난 글이나 전화를 낸다고 해도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기껏 '아햏햏'이라는 대답만 듣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또 한가지 분명한 것은 엽기에 신물난 네티즌들에게 '아햏햏'은 '아햏햏'한 장난감임에 틀림없다.

조두진기자 earf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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