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 프런티어-'방천얼음' 고충국씨

입력 2002-08-06 15:28:00

"얼음과 함께 35년을 시장통에서 살았습니다".35℃를 웃도는 폭염이 이어지면서 칠성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지만 고충국(51)씨의 '방천얼음' 가게만은 북적댄다.

시장 상인들이나 휴가를 떠나는 사람들의 얼음주문에 고씨의 손놀림은 쉴틈이 없다. 냉장고에서 꺼낸 1각(135kg)짜리 얼음을 톱으로 잘라 5관(17kg)짜리로 만드는데 5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시장상인들 사이에 '대구시내 얼음이 동나더라도 고씨 가게에는 있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고씨는 물량확보 수완이 좋고 그의 얼음은 가격도 싸다.

고씨는 16살 때 집안 일을 도우면서 얼음 일을 배웠다. 원대시장에서 어머니, 형들이 운영하던 가게에서 자전거를 타고 집집마다 무거운 얼음을 날랐다. 너무 힘들어 얼음일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군에서 제대한 지난 76년 23살 때부터 본격적인 '얼음인생'을 시작했다."예전엔 얼음을 새끼줄로 묶어 배달했습니다.

이제는 전기톱으로 자르고 트럭으로 운반하면서 다소 편해졌지만 여전히 고됩니다. 또 얼음장사는 동네 주변 '어깨'들이나 하는 일이라며 폄하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고씨는 요즘 가정마다 냉장고가 보급되면서 얼음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을 못내 섭섭해 했다. 불투명하고 희뿌연 얼음이 투명한 얼음으로 변했지만 예전처럼 얼음을 '식용'으로 여기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6월부터 10월까지인 성수기를 지나 11월부터 5월의 비성수기에도 고씨는 가게 문을 닫지 않는다. 시장 상인들 한명이라도 얼음을 사러 오는데 가게 문을 닫을 수는 없다는 것이다.

고씨는 "여름에는 휴가 한번 못 가봤지만 나에게 얼음일은 아이들 2명을 공부시키고 가계를 꾸리도록 해준 소중한 천직"이라고 말했다.

모현철기자 mohc@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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