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반세계화의 '로빈 후드'

입력 2002-08-03 14:52:00

99년 8월, 프랑스의 한 축산농민이 동료들과 함께 도끼와 톱 등 농기구를 실은 트랙터를 몰고 남부의 소도시 밀로에 짓고 있던 미국 패스트 푸드점인 맥도널드 분점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명분은 간단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는 반대한다"는 것이었다.

현대판 돈키호테 행동을 보인 그는 폭력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프랑스 전역과 심지어 미국에서도 답지한 성금으로 보석금을 내고 이내 풀려났다. 지난 수년간 반(反)세계화 불씨를 지핀 '로빈 후드'는 이렇게 탄생했다.

▲프랑스 농민연맹 창설자인 조제 보베(49). 그는 99년 11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리는 WTO(세계무역기구) 뉴라운드 협상을 앞두고 조직적인 반세계화 시위를 주도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넌다.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시위대 10만여명이 만든 '인간띠'로 인해 WTO회의는 취소됐으며 500여명이 경찰에 체포됐다.

유럽과 제3세계에 반세계화 운동의 상징인 소위 '시애틀 바람'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된 것이다. 그는 이후 주요 8개국 정상회의(G8).세계은행.IMF 회의가 있을 때마다 반세계화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달했다. 지금도 세계화 관련 회의는 바다위 선상(船上)이나 깊은 산골 마을에서 진행될 정도로 반대 세력의 심한 저항을 받고 있다.

▲조제 보베는 당연한 형사범인데도 프랑스로서는 그야말로 '뜨거운 감자'였다. 매장 파괴혐의로 징역 3개월의 형을 선고받았지만 미국과 농산물 교역 마찰을 빚고있는 프랑스는 국내 여론을 의식, 이래 저래 형집행을 미루어왔다.

그러다가 총선에서 중도 우파의 승리가 확정된 지난 6월에야 좌파 진영의 반발에도 불구 비로소 그를 수감됐다. 자신의 상징인 트랙터를 몰고 수 천여 지지자들의 환호 속에, 프랑스 만화 주인공 '아스테릭스'처럼 콧수염을 기른 채 수감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농민들의 우상이었다.

▲그런 그가 옥중 단식 투쟁 끝에 1일 교도소에서 수감 44일만에 정부의 사면 조치로 풀려났다. 그는 유전자조작(GM) 작물재배지를 파괴한 다른 혐의로 다시 구속될 것이라고 하지만 농민들의 열렬한 지지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의 실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빈부격차 확대.인간성 파괴 등 부작용들이 불거지고 있지만 세계화는 여전히 거스를 수 없는 대세(大勢)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은 법. 어두운 곳에서 신음하는 지구촌 10억 빈민들을 어떻게 아우르고, 그 문제점을 봉합해야 할지는 세계화 이데올로기가 안고 있는 영원한 숙제다.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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