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지도층의 타락

입력 2002-08-01 00:00:00

우리나라 지도층 인사들은 대부분 장상 총리지명자에 대한 국회의 임명 동의안 부결을 보고 의외라고 말한다. 부결시킨 국회마저 잠시 침묵이 흘렀다는 보도를 봐도 알 수 있다.

의외라고 보는 논거는 우선 장 지명자에 대한 의혹이 도덕성 수준이고 거짓말처럼 들리는 답변의 신뢰성에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첫 여성총리인데다 3당의 정치적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것도 있고 해서 통과는 낙관해 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의외였을까. 천만에 말씀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장 지명자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의 지도층 모두가 이래서는 나라가 안 된다는 민심의 소리가 국회를 통해 표출된 것이다.

인사검증 시스템이 잘못되었든 어떻든 간에 국민들은 보았다. 문민정부에서부터 지금의 국민의 정부까지 중도하차한 15명 정도의 고위공직자들의 흠을. 그리고 그 흠이 국민에게는 죄가 되는 것도 모르는 낯두꺼움도 보았다. 장상 총리 지명자 한사람에 대한 분노만이 아닌 것이다.

국민들은 우리의 지도층은 누릴 것만 누리고 해야 할 일은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조선조 숙종 때 호포제(戶布制)를 실시하려 하자 "평생 힘들여 글을 읽은 선비가 일자무식 상놈들처럼 포를 바쳐야 한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하고 들고 일어난 그 양반들과 같은 부류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중이 일어선 것이다. 엘리트여 반성하라며.

◈서울에 몰린 지도층

물론 우리나라 지도층이 어떻다는 통계조사는 없다. 다만 그동안의 언론보도만 봐도 느낄 수 있을 뿐이다. 앞서의 지적처럼 고위 공직자 15명의 중도하차가 그렇고 '신의 아들' '장군의 아들'이야기도 그렇고 '내 아이에게 미국 시민권을 생일 선물로'라는 캐치프레이즈로 자행되는 방미(訪美)출산 붐 등 '강남신화'를 봐도 그렇다.

그리고 이번 동의안이 부결된 후 청와대의 한 관계자가 했다는 "앞으로 누가 총리를 한다고 나서겠는가"라는 말도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도덕성에 자신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또 얼마 전 한 야당 중진은 "아들 친구 10명중 내 아들만 군에 갔더라"고 말했다. 이 정도면 지도층의 타락을 증명하고도 남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지도자는 어디에 살고 있는가.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99년도에 월간중앙이 전국 지도급 인사로 5만441명을 선정한 일이 있다. 이 자료를 보면 서울에만 전국 지도급 인사의 57.5%가 살고 이 중의 절반은 강남에 살며, 과천 등 서울 인근 도시를 합친 서울권에는 65.5%가 산다는 것이다.

이러니 지도층 타락에 대한 욕을 먹어도 서울이 먹어야 할 것 같다. 좀 과장해서 표현하면 돈, 권력, 인재를 가진 서울의 엘리트들이 타락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논리에 따라.

◈엘리트에 대한 기대

역사학자 토인비는 말했다. "문명의 성장단계에서는 강한 덕목을 가진 창조적 소수(엘리트)가 사회를 이끈다. 몰락하는 문명에서는 창조적 소수가 모범이 되지 못한다"고. 한마디로 역사발전은 엘리트가 이룬다는 말이다.

일본의 명치유신 성공과 한국의 한강의 기적 달성 등 엘리트들이 만든 성공신화는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우리의 엘리트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화랑의 전통을 잇지도 못하고 벌써 타락하고 있다. 어느 식자의 말처럼 우리는 벌써 쇠퇴의 길로 들어섰는가.

산업화 세력의 엘리트들은 세계가 놀란 정도의 경제성장은 이루었으나 권력에 맛에 타락해 버렸고, 민주화세력의 엘리트들은 민주화의 꿈은 어느 정도 이루었으나 황금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부패의 늪으로 빠져버렸다.

그렇다고 지식인 그룹마저 제 정신인가 하면 그도 아닌 것 같다. 홍위병파와 곡학아세파로 나뉘어 적(敵) 아니면 동지만 존재하는 살벌한 세상이 되어 있다. 아직은 지식약국(弱國)이어서 그런지 우리의 엘리트들은 IMF위기도 예고하지 못했고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도 명확히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정말 걱정이다.

지금이야말로 비전을 가지고 도덕성을 겸비한 새로운 세력이 나와야 할 때다. 이 세력은 이번 청문회가 보여준 '높은 수준의 도덕성, 엄격한 자기관리'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하고 또 '민의의 표현'이라는 말처럼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국민이 국정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한 '피플 파워 시대'의 의미도 살릴 수 있는 세력이어야 할 것이다.

서상호 본사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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