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풍-대구시의회에 바란다

입력 2002-07-25 15:06:00

흔히들 "전철(前轍)을 밟지 말라"는 얘기를 한다. '철'은 곧 앞서간 수레의 뒤집힌 바퀴자국을 이름이니 '이전 사람의 그릇된 일이나 행동의 자취'를 보고 이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반성의 뜻이 담긴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 국회는 전철을 매일같이 밟는다. 날만 새면 상대방 헐뜯기, 폭로전에 육탄충돌 직전까지 가는 게 다반사다. 국회가 하는 꼴을 지방의회가 배웠다.

며칠전 매일신문 1면의 기사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대구시의회와 경북도의회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상설화를 추진하겠다는 거였다. 광역의회가 시·도집행부에 대한 가장 중요한 견제·감시기능인 예산·결산 심의를 강화하기 위해 예결특위를 국회처럼 연중 상설화하겠다는 것이요, 내친김에 의원연구모임을 활성화하고 여론수렴기능 강화를 통해 광역의회의 위상회복에 나서겠다는 것이니 반갑지 아니한가.

사실 연중무휴인 국회예결위의 활동은 법을 만드는 기능만큼이나 중요하다. 예결위가 멈추면 국가예산이 움직이지 않는다. 정부 각부처·지자체 등에서 요청해 오는 예산을 돋보기를 갖다대고 살펴서 많으면 깎고 적으면 보태고, 몰래 숨긴 것은 찾아내고 급한 건 더 얹어주기도 해서 국민의 세금을 적기적소(適期適所)에 배분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예산이나 추경예산의 단순한 배분만이라면 예결위가 연중개점할 필요가 없다. 계속사업의 예산집행과정의 타당성·눈속임까지 살피고 캐내어서 다음의 집행규모와 속도까지 조절해야 한다. 국회예결위원들의 고도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대목이기도 하고, 연중개점의 필요성이기도 하다.

대구시 광역의회가 본예산 심의와 추경때나 몇차례씩 임시로 구성했던 예결위를 4개 상위(常委)에 버금가는 기능으로 상설화하겠다는 뜻도 바로 이런 것이라고 이해하고 싶다. 여기에는 그동안 문희갑 전 대구시장의 독선적 스타일에 휘둘려온 시의회의 '콤플렉스 탈출' 속내도 엿보인다.

기실 3대(代)를 거쳐온 광역시의회 예결위의 기능은 집행부가 편성·집행한 예산의 단순한 사후승인에 불과했다. 그저 도장만 찍었다는 얘기다. 지금껏 시의회 예결위는 해마다 연말의 대구시 본예산 심의와 연중 2회정도의 추경, 그리고 시교육청의 본예산과 추경을 합쳐 연중 6, 7회의 요식적 예산심의를 위해 그때마다 며칠씩 임시개점했다. 이러니 예결위원들이 전문성이 있을 턱이 없다.

"심의자체가 '통과의례'가 될수밖에 없었다"는 한 의원의 경험담이 오히려 솔직하다. 따라서 심의는 수박겉핥기가 되고 집행과정의 잘잘못에 대한 시정이 거의 불가능했다. 작년에 거부당한 항목을 올해 다시 끼워넣어도 모르고 넘어가는 식이었다.

이런 식이면 집행부 공무원들이 겉으론 "의원님, 의원님"하며 굽실대지만 속으론 웃는다.말이 난 김에 한마디만 더 하자. 그동안 그때그때 열려온 연중 6, 7회의 예결위를 4년에 곱하면 모두 24~28회. 27명의 대구시 의원 모두가 예결위원장 감투를 임기 4년동안 한번씩 돌아가며 쓸 수 있다는 계산이 된다. 대구시의원에 예결위원장이라, 명함용으로는 멋지다.

새로 출범한 민선4기 대구시의회 27명의 의원 중 절반이 초선의원이다. 이들이 돌아가며 예결위원이 되고 예결위원장이 된다면 어떨까. 대구시의 국장 과장들은 참 놀기 좋을 것이다.

이런 사정에서, 대구시의회가 예결위 상설화를 통해 구태를 벗고 거듭나겠다는 이 '변화의 바람'은 신선하다. 예결위원의 임기가 며칠이 아닌 1년단위로 되면 의원들의 예산 전문성은 크게 향상될 것이고 따라서 집행부의 예산편성 단계에서부터 의회의 몫은 커지고 중요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역의회 예결위의 상설화에 걱정부터 앞서는 것은 바로 엊그제 밤 중국집 회식자리의 폭력사태같은 '밥그릇 싸움' 때문이다.

당장 우리국회부터 그런 걱정의 빌미를 제공한다 .예산국회가 열릴때마다 자신의 지역구, 개인적 이해관계에 의해 국가예산을 주무르려는 낯뜨거운 풍경이 얼마나 많았던가. 광역의회가 예결위를 연중 상설화하면서 국회예결위의 순기능에 앞서 역(逆)기능부터 배울 개연성이 높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복잡한 수치, 용어 하나부터 어렵다는 예산안을 펼쳐놓고 '검은건 글씨요 흰것은 종이'라는 식의 비전문성이라면 1년짜리 예결위원 자격이 없다. 스스로 대구시를 경영한다는 출마의 초심(初心)과 공부하겠다는 자세가 안돼있다면 예결위원·예결위원장의 감투는 명함용, 족보용에 그치는 정도가 아니다. 그것은 의원 각자에게 주어진 손잡이 없는 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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