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수확기 농가 피해 현장을 가다

입력 2002-07-25 00:00:00

"힘들게 농사지어서 이제 겨우 수확하는 즐거움을 맛보려는데 멧돼지 떼가 몰려와 쑥대밭을 만들었어요. 부아가 치밀어 밭조차 보기도 싫습니다".

영주시 이산면 용상리 백승기(55)씨. 박봉산 용상골에 있는 수박밭만 생각하면 밤에 자다가도 화가 치밀어 오른다. 10여일 전부터 밤에 멧돼지 떼가 내려와 수확을 앞둔 수박을 깨부수는 통에 손해가 이만저만 아니기 때문이다.

멧돼지들의 농작물 습격(?)으로 인한 피해가 잇따르자 농가에선 지금 농작물 보호에 비상이 걸렸다. 같은 마을 김영정(38)씨는 "박봉산 인근 3천600여평 수박밭을 멧돼지 4~6마리가 헤집고 다녔다"며 "수박을 박살내거나 주둥이로 쪼아 구멍이 생긴 탓에 상품가치를 잃은 피해면적이 1천200여평에 달한다"고 한숨지었다.

마을주민 전우태(62)씨는 "3년전부터 해마다 피해가 계속돼 작년엔 영주시로부터 유해조수 포획허가까지 받았지만 경찰서에서 총기사고가 우려된다며 총기영치 해제를 해주지 않아 농민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입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소백산 국립공원구역인 영주 부석면 남대리에서 만난 주민들은 "최근 새끼가 딸린 멧돼지들이 옥수수밭과 감자밭을 파헤쳐 열매를 먹거나, 낮은 가지에 열린 사과를 따먹는 등 피해가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인가 주변까지 내려오는 경우도 있어 사람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자두 수확이 한창인 의성에서도 멧돼지 피해가 늘고 있다. 자두농사를 짓는 박수홍(45·의성군 봉양면 사부1리)씨는 "지난주 멧돼지 떼가 자두밭을 덮쳐 수확이 한창인 자두 과수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다"며 "멧돼지를 쫓기 위해 진돗개 2마리를 풀어놓고, 경운기 시동을 걸어놓고 밤을 지샌다"고 말했다.

고추밭을 일구는 정재학(43·청송군 부남면 화장리)씨의 경우 야산 아래 있는 고추밭 400여평이 멧돼지 때문에 파헤쳐졌고, 인근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농민들도 멧돼지와 고라니·산까치로 인해 과수원 수천평이 피해를 입었다.

이처럼 맷돼지 피해가 잇따르면서 농민들은 철조망을 치고 길목에 구덩이를 파는 등의 방법을 세웠지만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행정당국이나 경찰은 총기사고 우려로 포획허가를 내주는데 난색을 표하고 있다. 때문에 애가 탄 농가에서는 덫이나 약물을 이용하지만 불법 밀렵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쓸 판이다.

경찰 관계자는 "멧돼지들로 인한 피해는 안타깝지만 지금처럼 녹음이 우거진 상태에선 자칫 총기사고 우려가 높다"며 "또 총기는 낮시간만 사용할 수 있어 멧돼지 활동시간인 야간에는 큰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고 말했다.

농작물을 무차별적으로 습격하는 멧돼지 떼와 이를 보호하기 위한 농민들간의 전쟁(?)은 올해도 이렇게 계속되고 있다.

김진만·이희대·김경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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