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세대-(4)직장.여가생활

입력 2002-07-22 14:00:00

유료 e-메일제작업체에 근무하는 박태상(31)씨는 신천교 근처의 집에서 경대교에 있는 회사까지 인라인스케이트(일명 롤러 블레이드)으로 출퇴근한다.

"처음에는 좀 쑥스러웠지만 자전거를 타고 다니는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남 눈치보지 않고 한다는 생각에 인라인스케이트로 출퇴근합니다. 회사 사장님은 물론 직원 9명 중 7명이 인라인 스케이팅 동호인이고 출퇴근하는 사람도 2명이나 더 있습니다".

게임제작 벤처업체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는 김창태(29)씨는 게임에 살고 게임에 죽는 '겜생겜사' 스타일. 아침 7시가 조금 넘어 출근해 밤 11시30분이 넘어서야 퇴근을 한다. 하루 24시간의 3분의2 이상을 회사에서 보내 다른 사람이 보면 일에 혹독하게 시달리는 것 같지만 김씨는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회사는 즐거워야하고 적성에 맞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게임을 개발하면서 관련 기술을 익히거나 좋아하는 게임을 마음껏 할 수 있고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점에서 만족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볼 수 없던 이러한 직장에 대한 생각이나 주변 풍속도가 급속히 변하고 있는 것은 요즘 젊은 층의 세태감각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물론 1990년대 중반이후 인터넷이 보편화되고 벤처기업이 뜨면서 만들어 낸 단면이기도 하지만 주관이 뚜렷하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그에 따른 분명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는 현재 젊은이들이 새롭게 구축하고 있는 신 풍속도이기도 하다.

게임제작 벤처업체 디자이너인 유준영(28)씨는 사무실 분위기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는 스타일이다. '디자이너는 아이디어가 생명인 만큼 기분이 좋아야 창의성이 발휘된다'는 명분으로 집기교체를 요구하거나 아예 사비를 들여 서랍장, 의자 등을 교체했다.

이 회사 이정원 사장은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으로 정해져 있지만 출퇴근은 자유로운 편"이라며 "적성에 맞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에 수당이 없어도 야근하기가 일쑤"라고 말했다.

이런 젊은 직장인들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지난 월드컵때 붉은 악마들이 보여준 '순수한 열정'이다.

많은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자신들의 일을 잠깐 접어두고 전국 경기장을 돌아다니며 응원을 펼쳤듯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다른 모든 것을 미룰 정도로 끝없는 애정과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또 일에서와 마찬가지로 취미생활인 놀이에서도 기성세대의 눈으로 보면 이상스러울 정도의 열정으로 나타난다.

앞선 박태상씨의 경우 오는 30일이면 프랑스 파리에 있을 예정이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열리는 세계 최대의 인라인 스케이팅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또 유준영씨는 새로 취미를 들인 사진을 찍기 위해 차를 살 자금으로 최신 기종의 디지털 카메라를 장만했고, 여자친구 얼굴을 찍어 출품한 디지털 카메라 콘테스트에서 준우승을 먹었다.

유씨는 "어른들의 걱정과는 달리 요즘 세대들은 시키지 않아도 할 일이 있으면 야근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책임감이 강하고 예의도 바른 편"이라며 "일과 놀이를 모두 잘하는 젊은이들"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예비 직장인들인 대학생들에게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취업정보회사인 리크루트가 최근 조사한 '대학생 취업 희망업종'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에 비해 금융.보험업이나 정부.공사.협회 등에 대한 업종선호도가 크게 높아졌다.

이들 업종은 주 5일 근무제를 실시하는 곳으로 요즘 세대들이 돈이나 주변의 평가, 사회적 지위 등보다는 여유나 개인시간 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과외를 많이 한다는 이원진(24.경북대 3)씨와 어학연수 비용마련을 위해 구미의 공장신축 공사장에서 15일 동안 잡일을 했다는 전병권(25.경북대 3)씨는 "집에서 돈을 받아쓰기가 쑥스러워 과외수입으로 생활비와 학비에 보탠다"며 "많이 알려진 것처럼 막쓰기 위해 개인 시간을 줄여 가며 일을 하는 것은 아니라 나름대로의 목적과 여유를 즐기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 월드컵 때 자원봉사를 했다는 김상현(24.경북대 2)씨는 "자신이 좋아하거나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언제라도 쑥 빠져들 수 있는 열정적인 세대"라며 "그에 따르는 책임감은 늘 부담이지만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것도 우리 세대"라고 말했다.

정지화기자 jjhw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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