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수입 세이프가드 연장돼야

입력 2002-07-20 00:00:00

지난 2000년 7월 매듭지은 한.중 마늘협상 결과를 둘러싸고 문제가 다시 불거지고 있다. 협상을 통해 한국은 저율(30~50%) 관세 수입쿼터량을 연간 3만2천t으로 늘려주고 2002년까지 세이프가드 조치를 유지하는 대가로 중국의 휴대폰 및 폴리에틸렌 수입금지조치 철회를 얻어냈었다.

그런데 "2003년부터 마늘 수입을 자유화 한다"는 합의문 부속서의 내용이 새롭게 알려지면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부속서 내용대로라면 내년부터는 30% 저율 관세만 부담하면 무제한 마늘 수입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국내외 가격차가 심한 상황에서 국내 마늘산업에 미치는 직접적인 충격은 물론, 다른 농업부문에 미칠 간접적인 파급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도 이 조항에 발목이 잡혀 더 이상 세이프가드 연장이 안 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불리한 협상을 해놓고 스스로 진퇴양난의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세이프가드 조치를 연장하는 것은 WTO 규정(세이프가드에 관한 협정 제7조)에 정해진 수입국의 당연한 권리이다. 요건이 충족되는 한 8년까지 연장이 가능하다. 저율관세의 수입쿼터를 3만 2천 t으로 양보했으면 세이프가드 기간만 정해 놓는 것으로 충분했다.

세이프가드 조치는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 요건이 충족되면 수입국의 일방적 조치로 발동될 수 있는 국제규범상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대의 보복조치 위협에 굴복하고 이 권리를 포기하고 만 것이다. 이렇게 협상을 했으니 결과를 제대로 국민들에게 알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런 결과가 나온 데에는 중국이 우리의 제3의 수출시장이라는 점이 작용했겠지만, 근본적으로는 농업에 대한 인식의 부족이 바탕에 깔려 있다. 돈이 되지 않는 농업과 농산품은 효율성의 잣대 앞에서 언제나 한국 경제의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아 왔다.

농업이 진정으로 중요하다는 인식이 전제되었더라면 중국이 아무리 힘으로 밀어붙인들 이런 식의 협상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농업문제는 슬쩍 탈 없이 넘어가면 그만인 그런 대상으로 생각해서일까.

농업의 중요성은 단순히 산출물의 상품가치에 있지 않다. 농업이 있음으로써 식량안보나 환경보존은 물론, 국가 발전의 필수적 요소인 균형적 지역사회의 유지와 국토보존이 가능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농업은 농민에게가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에게 중요한 산업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한국은 싱가포르와 같은 도시국가가 될 수는 없다.

문제가 확대되자 금년 말 종료를 알면서도 대책 없이 쉬쉬해 오던 정부는 서둘러 가격 폭락시 마늘을 전량 수매하겠다고 발표하였다. 애초에 협상을 제대로 했더라면 지출하지 않아도 되었을 귀중한 정부예산이 낭비되고, 결국은 그만큼 국민의 부담을 가중시킨 셈이다.

따지고 보면 문제의 불씨는 이미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때 신선마늘과 냉장마늘에 대해서는 400% 수준의 고율 관세로 양허한 반면, 문제가 된 냉동 및 초산조제마늘에 대해서는 국제거래가 없으리라는 기대로 30%의 낮은 관세율로 양허했던 것이다. 무역업자들이 이런 제도적 허점을 그냥 지나칠 리 없다. 냉동마늘과 초산마늘의 수입이 급증하자 한국으로서는 허를 찔리게 된 것이다.

마늘은 농가소득에서 쌀 다음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 뿐만 아니라 전체 농가의 1/3에 해당하는 50만에 가까운 농가가 생산하는 중요한 품목이다. 그렇다면 냉동형태든 초산으로 가공된 것이든 일반 신선 마늘과 깊은 대체관계가 있을 터인데 터무니없이 낮은 관세율로 양허한 것이 문제의 단초가 되었다.

장기적으로는 마늘산업의 경쟁력 향상을 위해 지속적인 노력과 투자가 있어야 함은 두말 할 나위 없다. 그러나 우선 당장은 세이프가드 조치를 연장하는 일이 급선무이다.

30% 저율관세에 수입되는 중국산 마늘과 경쟁하여 견딜 수 있는 생산농가는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매정책은 국내외 가격차가 커 한계가 있고 막대한 재정 자금이 소요되어 옳은 해결책은 아니다.

또 수매에 따른 추가적 재정지출은 WTO의 국내지지(보조) 감축 의무에 위반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양국 간 합의가 있었다 해도 세이프가드 연장은 WTO 협정이 정하고 있는 것인 만큼 재협상은 가능할 것이다.

더구나 중국은 이제 WTO 회원국이 되었다. 과거처럼 합법적인 세이프가드 발동에 대해 국제규범과 관례를 무시하는 보복조치를 취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시 중국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 수입마늘로 인해 국내산업에 심각한 피해 우려가 여전히 존재한다는 점을 조목조목 설명하여야 한다.

그리고 국제규범에 따른 적절한 무역보상방법 협의와 함께 연장 불가피성에 대한 양해를 받아내야 한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합의사항 때문에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용기 영남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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