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면전문점 연 탈북자 최경옥씨-'동포의 정 담은 감자냉면'

입력 2002-07-20 00:00:00

지난 96년 탈북한 최경옥(30.여)씨는 이 달 들어 겹경사를 맞았다. 탈북 후 중국을 거쳐 천신만고끝에 대구에 정착해 이 달 초 달서구 상인동에다 '백두산량강도감자랭면'이라는 냉면전문점을 개업, 어엿한 '사장님'이 된데다 덤으로 남한 친구들까지 여러명 얻게된 것.

남한에 친구가 없던 최씨에게 벗이 되어주겠다고 찾아온 이들은 한국이웃사랑회의 후원으로 최근 결성된 북한이탈주민을 돕는 모임 '이웃사촌' 회원들.

4명으로 구성된 이웃사촌 회원들은 개업초기 최씨 가게의 광고전단지 돌리는 일을 거드는가 하면 최씨의 어린 남매 공부까지 돌봐준다.

"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찾아올까". 최씨는 처음엔 끊임 없이 의문부호를 달았다."당연히 신뢰할 수 없었죠. 제가 느낀 남한 사람들은 굉장히 차갑고 탈북자를 무시한다는 느낌이었거든요. 99년 입국한 후 지금까지 속은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어요".

하지만 최씨도 '이웃사촌'들과 만남을 통해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웃사촌' 회원들도 처음엔 최씨를 도우러 왔지만 "오히려 배울게 더 많다"며 입을 딱 벌린다. 음식 만드는 일에서부터 가게홍보까지 똑소리나게 일을 처리해 여장부 기질까지 느껴진다는 것.

"저희들은 언니(최씨를 지칭)의 음식에 대한 고집에 놀랐어요. 순수 양강도식 냉면, 만두, 밑반찬만 고집하다보니 손님과 마찰을 빚기도 하죠. 그런데 결국엔 언니가 이겨요. 다퉜던 손님들이 '그 맛을 못잊겠다'며 또 찾아오거든요". 회원들은 최씨 칭찬에 입이 마른다.

최씨의 고향은 양강도 백두산 아래 개마고원 부근. 96년 어머니, 남동생과 함께 목숨을 걸고 압록강을 건넜다. 중국 도피시절 철강공장에서 숨어 일하며 손이 다 비뚤어질 정도의 고생도 했다.

영화나 소설을 뺨치는 최씨의 '탈북 스토리'. '이웃사촌' 회원들은 이야기꽃을 통해 최씨와 더 친해지고 있다.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사장님도 되고.... 이 곳은 희망의 땅입니다. 요즘엔 희망의 땅이라는 생각 외에 남한이 참 따뜻한 곳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북한 사람들이 이 곳에 와서 남한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을 많이 갖는데 이젠 생각을 좀 바꿔도 되겠어요.

'이웃사촌' 친구들이 제게 한 것처럼 저도 압록강 넘던 기억을 잊지않고 꼭 성공해 이 사회에 봉사하며 살겠습니다". 최씨는 오늘도 비지땀 가득한 얼굴로 감자냉면을 만들며 자신을 받아들여준 사회에 대한 보답을 준비하고 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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