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나막신에 풀 돋을때까지

입력 2002-07-19 14:17:00

언제 부터인가 우리네 살아가는 모습들을 보면 참 바빠졌다는 생각이 든다. 행동거지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분주해졌다.그래서 요즘 세상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모두가 급행열차를 탄 기분이다.

현대문명에 그 책임을 모두 전가시킬 수는 없지만 그래도 정보문화와 교통문화가 한몫을 거든 탓이라는 점에는 별 의의가 없을 것이다. 옛말에 급히 먹는 밥이 체한다는 말이 있다. 수 년전 서울 한 복판에 성수대교가 눈깜빡할 사이에 폭싹 내려앉은 것만보더라도 결코 이와 무관하지만은 않을성 싶다.

경운기가 생기기 전만해도 농촌에서 짐과 나락을 실어 나르던 교통수단이 소 달구지 였음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흙먼지이는 농로를 따라 세월아 네월아 집으로 돌아 가던 소달구지 풍경에서 한국인의 여유로운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요즈음 한국 음악을 전공하는 젊은이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어서어서 배우고, 또 어서 빨리 명인이 되는 길이다. 열매가 익기도 전에 따 먹으려 든다.

그러나 기계 조립하듯 그렇게 쉽사리 명인이 되는 지름길은 없다. 옛날 사람들이 그것을 몰라 일생동안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겠는가? 그들은 스승에게 배운 곡을 수 천번 수 만번의 독공을 쌓고도 그에 만족하지 않았다.

조선말기 헌종.고종 시절에 이름을 떨친 젓대(대금)의 명인 정약대란 사람의 일화가 있다. 그는 밥만 먹으면 매일 같이 서울 인왕산 중턱에 올라 젓대 불기 10년을 하루같이 하였단다.

7.8분 소요의 '도들이'란 곡을 부는데, 한번 끝날 때 마다 나막신에 모래 한 알을 넣고, 이렇게 하루종일 반복하여 모래 알이 나막신에 가득 채워져야만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런데 10년 되던 어느날 그 나막신에 쌓인 모래 알속에서 이상한 풀이 돋아나왔다는 것이다.

신도 그의 노력에 탄복했던 모양이다. 그는 이렇게 하여 대성한 명인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자신의 노력보다 기계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배움의 현장에서도 스승의 코앞에 카세트를 서슴없이 갖다대는일은 예사가 되어버렸다. 이제 세상도 많이 변해 명인 양산 시대가 도래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천리길도 한 걸음 부터라는 말의 의미를 다시한번 마음에 되새겨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순리대로 사는 지혜를 먼저 익혀 두었으면 한다.

김경배 인간문화재.경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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