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서부 대개발 현장을 가다

입력 2002-07-11 14:00:00

중국 서부지역은 거대한 공사판이었다. 대도시 지역은 물론 소수민족들이 사는 산간벽지와 오지까지 개발열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중국대학선교회(China University Mission.대표 이필립)의 선교 여행에 동행, 지난달 29일부터 지난 6일까지 시안(西安) 란저우(蘭州) 시닝(西寧) 등 중국 서부 지역을 찾아 서부대개발의 현장을 둘러보았다.

한국과 터키간에 월드컵 3.4위전이 열린 지난달 29일 오후. 김해공항에서 시안으로 떠나는 중국 서북항공 여객기에 오르려는 순간, TV에선 서해 교전 사실과 우리 해군의 피해내용을 숨가쁘게 보도했다. 막연한 불안감을 뒤로 하고 시안으로 향했다.

산시(陝西)성의 성도 시안은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한 시황제(始皇帝)가 도읍으로 정한 곳이다. 시황제의 무덤과 병마용이 발견된 뒤 시안은 더욱 유명해졌다.

때문에 대부분 시안을 관광도시로만 알고 있다. 사실 많은 외국인들이 병마용 관광을 위해 시안을 찾고 있다.

그러나 2천년 고도 시안은 이제 서부대개발의 시발점으로 환골탈태중이었다. 서부대개발의 열풍을 타고 국내외 자본이 물밀듯이 몰려들고 있는 곳이다. 시안 시내 곳곳에서 초현대식 고층건물들이 속속 올라가고 있었고 낡은 건물들을 부수는 현장이 목격됐다.

서부대개발의 쌍두마차는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와 시안. 그러나 시안은 지난 2000년까지 외자유치 실적에서 청두에 뒤졌다. 2000년들어 시안은 5억4천만달러의 외자를 유치, 3억6천만달러에 그친 청두를 처음으로 제쳤다. 시안이 '시황제의 음덕'에서 벗어나 스스로 도약하는 기반을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자본들이 시안을 택한 이유는 무얼까? 산시성 정부가 외자유치에 발벗고 뛰는데다 풍부한 첨단 고급인력 등 인프라를 갖췄기 때문이다. 시안양 공항에서 시안시내로 들어가는 관문도로에 '서부대개발 시안대발전'이라는 큼지막한 글씨를 써놓을 만큼 산시성 정부는 외자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시안에는 시안교통대학을 비롯 대학만 43개가 있다. 또 연구소도 228곳이나 된다. 시안교통대학 국제합작교류처 쉬엔 용시(沈永錫) 부교수는 "시안은 베이징.상하이에 이어 중국에서 세번째로 풍부한 첨단 인력자원을 보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사전 연락없이 불쑥 찾은 기자를 경계해 학교자랑만 늘어놓았다. 시안을 제대로 소개해야 한국 기업들이 투자하지 않겠느냐고 꾀었으나 "외자를 적극 유치해야 하는 민감한 시기이므로 자세한 내용을 밝힐 수 없다"며 말문을 닫았다

30일 오후 시안에서 간쑤(甘肅)성 란저우로 가는 밤열차를 타기 위해 시안역으로 향했다. 시안역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었다. 중국 각지로 떠나는 중국인들이 역 대합실을 빼곡이 채웠고 암표상이 날뛰었다.

일행 6명은 란저우로 가는 침대칸 열차표를 암표상을 통해 어렵지않게 구했다. 암표상에게 웃돈을 준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중국돈으로 1인당 5위안씩 30위안을 더 내란다.

'서안역참 경영개발총공사'가 서부대개발 비용에 충당하기 위해 발행한 채권을 추가 구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란저우에 도착한 뒤 이것은 '약과'라는 사실을 알게됐다.

12시간을 달려 다음날 아침 란저우에 도착했다. 란저우도 시내 곳곳에서 시안과 마찬가지로 서부대개발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란저우 역앞의 대형간판은 '서부대개발은 란저우로부터' 문구를 써놓았고 시내 도처에서 대형건물이 세워지고 있었다.

약속된 일정탓에 란저우 시내 둔황박물관조차 견학하지 못하고 린샤(臨夏)행 버스를 타기위해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린샤까지 가는 버스비는 1인당 26위안. 그런데 배보다 더 큰 배꼽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행에 위험이 따르는 오지여서 외국인은 무조건 상해보험에 가입해야 버스표를 판다는 것이다. 보험료는 1인당 40위안. 사고시 최고 30만 위엔(4천800만원)의 보험금을 준다고 했지만 기재사항이 주소와 보험자.피보험자 뿐이어서 도무지 미덥지 않았다.

울며 겨자먹기로 보험료를 내고서야 린샤행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린샤를 거쳐 지스산(積石山)에 이르자 말로만 듣던 중국 소수민족들이 눈에 띄었다. 간쑤성과 칭하이(靑海)성의 경계로 황하 상류지역인 목적지 따흐지아(大夏家)에 도착한 것은 시안을 출발한 지 26시간만이었다.

여정중에 특히 눈에 띈 것은 포장 비포장도로를 막론하고 도로가의 집들이 모두 '새 집'이거나 신축중인 집들이었다는 점이다. 새 집을 짓는다는 건 그만큼 생활에 여유가 생겼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이처럼 한 집 건너 한 집꼴로 주택신축이 붐을 이루다보니 벽돌수요 또한 만만치 않은 듯 마을마다 벽돌공장이 들어서 있었다.

따흐지아로 가는 버스에서 만난 투(土)족 할머니의 권유로 그 할머니 집에서 하룻밤을 묵기로 했다. 요즘 생활형편이 어떠냐고 넌지시 묻자, 할머니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서부대개발의 영향이 벽지의 소수 민족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라마불교를 믿는 투족 마을에서 만난 남자들은 노소를 막론하고 아침부터 술에 절어 있는 사람이 많았다. TV 등의 영향으로 '바깥 세상'의 선진 문물을 접한데다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는 설움이 좌절을 안긴 탓이라고 했다.투 족 마을을 떠나 이슬람교를 믿는 빠오안(保安)족 마을을 방문했다.

올해 사우디의 메카 성지순례를 다녀온 노인 집에 들러 차와 음식을 대접받았다. 키가 훤칠한 이 노인은 우리 돈으로 1천500만원이나 들여 성지순례를 다녀온 사실을 자랑하고 싶어했다. 하긴 간쑤성에서 100명만 다녀온 '대단한 여행'을 했으니 자랑할만도 했다.

빠오안족 마을을 떠나 칭하이성 쉰화(循化)현에 있는 중국의 3대 천지(天池)중 하나인 멍따(孟達)천지에 올랐다. 험산을 굽이굽이 돌아 멍따 천지 입구에 이르자 이곳에서도 공사장의 소음이 요란했다. 호텔을 신축중이었다. 서부대개발이 단순히 고속도로와 철도, 대형 가스관로 등 인프라만 건설하는 게 아니라 산골 오지의 관광지 개발까지 포함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사라족이 끄는 말을 타고 30여분을 오르니 멍따 천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도처에서 싯누런 황토물만 보다 맑은 물이 고인 천지가 눈을 크게 뜨게했지만 백두산 천지를 보는 감격은 느낄 수 없었다.

사라족 마을에서 묵고 이튿날 따흐지아로 나와 칭하이성 성도 시닝(西寧)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시닝으로 가는 버스에서 본 풍경도 다른 곳과 비슷했다. 도로변의 집들은 신축붐을 타고 곳곳에서 공사중이었다. 여기에다 티벳 자치구 성도 라사와 잇는 고속도로와 철도공사가 한창이었다. 또 도로확장 포장 공사 및 교량공사가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시닝은 시안, 란저우와 달리 서부대개발의 열기가 상대적으로 낮았다. 하지만 시닝에서 시안으로 가는 열차에서 본 차창 풍경은 또 달랐다. 밤 11시가 넘은 시각인데도 공사장들은 대낮같이 불을 밝히고 있었고 대형트럭들이 쉴새없이 들락거렸다.

시안에서 세시간 거리인 바오지(寶鷄)근처에 이르자 공사는 더욱 활기를 띠어 터널 및 교량공사 도로와 철도공사, 철로변 불량건물 철거 등 대형 구조물 공사가 줄곧 이어졌다. 중국 서부지역이 낡은 껍질을 벗고 새단장할 모습이 궁금해졌다.

조영창 기자 cyc1@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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