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 지도를 할 때 부딪히는 골치 아픈 문제 가운데 하나는 이들에게 자기 학년 수준을 넘어선 내용을 미리 가르칠 것인가, 아니면 현재의 학년 수준에서 좀 더 고차원적인 사고력이 요구되는 문제를 다루게 할 것인가의 여부다.
학부모들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히 빠른 성취를 위해 학년 수준을 뛰어넘는 내용을 가르치는 속진이 맞지 않겠느냐고 할 것이다. 초등학생에게 중학교 과정, 중학생에게 고교 과정을 가르치는 학원이 인기를 끄는 걸 보면 학부모들의 속진에 대한 욕심은 지나칠 정도여서 걱정이 앞선다.
영재교육에서든 사교육에서든, 속진 프로그램은 동일한 연령의 학생들에 비해 적어도 한 단계 더 높은 교과서를 이용해 지도하는 게 일반적인 형태다. 예컨대 초등학교 5학년생에게 6학년 내용이나 심지어 중학교 1, 2학년의 내용을 미리 가르치는 방식이다. 학부모들은 자신의 자녀가 이런 학원에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흐뭇해한다.
그러나 단순히 한두 단계 높은 수준을 빠르게 가르치는 속진 프로그램은 자칫 어린이들의 지적 성장을 크게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유년기에 경험해야 할 많은 것을 잃게 할 위험성이 있는 것이다.
사교육에서의 속진 프로그램은 대개 정규 교육과정만을 대상으로 빠른 학습 속도에 초점을 맞추게 됨으로써 어린이들의 과제 집착력이나 창의적인 사고력 계발 신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초등학생들의 수학적 활동은 단순히 공식을 외우는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조작 과정을 거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속진 프로그램은 개념과 원리.법칙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만을 가능하게 한다.
충분한 이해와 습득에 의한 게 아니라 암기와 기억에 의존하는 학습, 자율이 아닌 타율에 의한 수동적인 학습이 반복됨으로써 학생들은 창의성을 심각하게 손상받고 학년이 오를수록 공부에 대한 흥미와 자신감을 잃기 쉬워진다.
심화 프로그램이라고 해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심화는 학문적인 완결성을 추구하면서 논리성과 추상성이 강하기 때문에 학생 개개인의 특성을 반영하는 프로그램을 구성하기가 매우 어렵다.
따라서 속진과 심화, 두 가지를 적절히 조화시키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외국의 연구사례에서도 단독적인 속진 프로그램보다는 독창적인 문제 해결 기회를 제공하는 일련의 심화 프로그램을 기초로 한 속진을 채택하는 경우가 많다.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는 단순히 정규 교과에서 다루는 내용만으로는 부족한 게 틀림 없다. 그렇다고 용어도 모르는 상태에서 막무가내로 끌고가는 속진은 '독약'과 다름없다.
교육과정에 바탕을 둔 심화 발전적인 내용에 대한 학습의 기회를 우선적으로 제공한 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의 속진을 시키는 게 첫 단계다.
다음으로 개별적 능력을 따져 교육과정 이상의 속진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한편 수학 퍼즐이나 비정형적인 문제, 전문가에 의해서 고안된 심화학습 프로그램을 함께 제공해야 할 것이다.
남승인(대구교대 영재교육원 수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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