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월드컵에서 가장 두드러진 전술적 특징은 압박축구였다.90년 이탈리아월드컵을 통해 세계축구의 새로운 조류로 떠올랐던 압박축구는 이번 대회에서 우승후보들을 침몰시킨 이변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상대가 쥔 공을 뺏기 위해 수비수 서너명이 순식간에 에워싸는 농구의 올코트프레싱이 코트를 넘어 그라운드에서도 득세하면서 '축구는 운동장을 넓게 써야 제격'이라는 말은 이제 흘러간 옛말이 됐다.
다만 압박과 관련해 이번 대회에서 눈에 띄게 달라진 현상은 프레싱이 위치를 불문하고 이뤄졌다는 점.
과거에는 미드필드에서 볼을 뺏고 뺏기는 공방을 펼치는 게 보편적이었지만, 이번에는 중거리슛 한방이 실점으로 이어지는 아크 주위와 측면 크로스가 올라가는 터치라인 등 위험지역 부근에서도 볼 점유를 위한 압박이 중원에서의 강도 못지 않게 치열했다.
이에 따라 좁은 공간 안에서 흐름을 유지하기 위한 정확하고 간결한 패스워크와 이를 뒷받침하는 강인한 체력과 유기적인 조직력, 그리고 볼을 빼앗은 뒤 원, 투터치 패스로 득점하는 골결정력은 압박축구에 필수불가결한 요소가 됐다.
이런 적극적이고도 공격적인 전술 흐름은 약체로 평가되던 팀들이 강호들을 격파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개최국 한국이 4강 신화를 창조하고 처녀 출전국 세네갈과 '영원한 변방' 미국이 당당히 8강에 진입한 것도 전술적 측면에서만 놓고 볼 때 압박축구로 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다.
브라질이 예상을 뒤엎고 결승에 오른 것 또한 특유의 개인기에 압박 위주의 수비 조직력을 가미한 데 따른 당연한 귀결이라는 분석이다.
압박축구가 낳은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축구의 전술적 경향이 '바닥이 좁은' 농구를 닮아가면서 이번 대회는 이탈리아대회 이후 가장 골이 터지지 않은 대회로 남았다.
전체 64경기에서 자책골 3골을 포함해 모두 161골, 평균 2.52골이 나왔는데 이는 4년 전 프랑스대회(2.67골)와 94년 미국대회(2.71골, 이상 평균)에 비해 크게 떨어진 수치다.
더욱이 첨단과학 기술을 동원해 반발력을 최대한 끌어올린 공인구 '피버노바'의 등장과 이에 따른 대량 득점 예상을 고려하면 본선에서 드러난 압박의 강도와 그 효율성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압박축구가 한일월드컵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세계축구의 전반적인 플레이 스타일도 적지않은 변화가 있을 전망이다. 개인기와 조직력의 대결이란 수식어가 점차 자취를 감추고, 그라운드는 체력과 기술을 겸비해 공수를 넘나드는 멀티플레이어들의 경연장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크다.
김교성기자 kgs@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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