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수돈(91.경북 구미시 봉곡동)옹은 요즘 젊은이 못지 않게 많은 스케줄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독서와 음악감상, 사군자 그리기, 노인대학 강연, 한달에 한번꼴인 일본 나들이 등 도저히 구순(九旬) 노인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부지런히 몸을 움직인다.
65세 때 취미삼아 시작한 사군자는 그의 큰 소일거리 중 하나. 그는 매주 화.금요일 오후 대구시 수성구 만촌2동 동사무소에 마련된 서예교실에 빠짐없이 출석, 묵향에 젖기도 하고 문화재 강좌를 듣는 등 알찬 시간을 보내고 있다. 함께 글씨를 익히는 60, 70대 노인들은 차옹의 친구들. 비록 나이 차이는 많지만 차옹에게는 그들이 오랜 친구나 다름없다.
1911년 12월 30일생인 차옹의 고향은 경북 하양. 중농의 4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별 부족한 것 없이 지내온 그는 15세때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선친은 일본유학을 반대했다. 국내에서 농업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농사짓는 것이 선친의 뜻이었다.
하지만 차옹은 그 뜻을 거스르고 일본행을 결심했다. 도쿄의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어려움이 많았다. 선친이 반대한 유학인 탓에 집에서 보내온 생활비는 늘 부족했다. 그래서 정원 손질 등 아르바이트로 4년간 학비를 조달하는 등 어렵게 과정을 마쳤다.
중학 졸업후 그는 4년과정의 도쿄 수의전문학교에 진학, 졸업했다. 그의 나이 23세때다. 차옹은 "당시만해도 수의사로서 할 일이 많지 않았어. 그래서 만주로 건너가 이런저런 일을 하다 3년을 보낸 후 귀국했지"라고 지난날을 회고했다. 한때 중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이내 그만두었다. 별 일 없이 고향에서 농사를 짓던 그는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교단에 복직해 경산 진량중고에서 실업 및 생물교사로 28년 가까이 근무했다.
퇴직후 10년 가까이 여행사에 근무하기도 한 그는 일본문화에 익숙하고 현지에 친구들도 많아 노인대학의 일본여행 가이드 역할을 맡기도 했다. 요즘은 한달에 한번 꼴로 혼자 일본나들이를 할 정도.
주로 8~9시간 걸리는 배편을 이용하는 여행이지만 젊은 배낭족 못지 않는 열정으로 재미있게 여행을 즐기고 있다. 차옹이 사군자를 처음 접한 것은 한 중국인으로부터다. 재미삼아 붓을 잡은 것이 벌써 30년에 가깝다. 27세때 결혼한 이후 해로해온 아내를 7년전 먼저 떠나보낸 후 요즘은 시간나는 대로 붓을 잡는다.
아침 7시면 어김없이 일어나고 밤 11시면 잠자리에 드는 규칙적인 생활이 차옹의 건강비결. 아침 일찍 그날 일정을 잡고 그대로 지킨다는 차옹은 주로 낮에 일본 친구들이 보내준 '문예춘추' 등 일본 잡지와 서적을 읽거나 음악을 듣고, 모임에 나가 강연하는 등 바쁘게 움직인다.
평소 건강한 체질이라고 소개한 차옹은 요즘도 하루 반갑씩 담배를 태우지만 술은 전혀 하지 않는다. 평생 소식(少食)해왔고, 단 것을 좋아해 늘 사탕을 갖고 다니며 먹을 정도. 한달 용돈은 약 30만원이라고 귀띔했다. 주 활동무대가 대구여서 구미의 아들 집에는 한 주에 이틀정도 머문다는 그는 대구의 지인이 마련해준 거처에서 거의 생활하고 있다.
"또래 친구들은 이미 다 죽고 없어. 그래서 조금 외롭기도 하지만 젊은 친구들이 많아 좋아. 나이 차가 나면 어때. 서로 대화가 되고 어울릴 수 있으면 그만이야…".일본에도 50, 60대 젊은 친구들이 많다고 소개한 차옹은 매달 일본나들이를 가면 그 친구들이 서로 반갑게 맞아주고 서로 자기 집에 묵고 가라고 해서 아주 즐겁다고 말했다.
몇달 전 허리를 다쳐 조금 불편하긴하지만 너무 바빠 아플 시간도 없다며 활짝 웃는 차옹은 그래도 아직 건강에는 별 문제가 없다며 벌떡 일어나 한 발로 균형을 잡아 보인다. 증손까지 본 망백(望百)의 나이지만 한.일 민간교류를 통해 양국의 친선을 도모하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는 그의 소망이 가슴에 와닿는다.
서종철기자 kyo425@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TK신공항, 전북 전주에 밀렸다"…국토위 파행, 여야 대치에 '영호남' 소환
헌재, 감사원장·검사 탄핵 '전원일치' 기각…尹 사건 가늠자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