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돌보는 노인 봉사자들

입력 2002-07-06 12:24:00

교장선생님으로 퇴직한 이규익(74.대구시 달서구 성당동)씨는 퇴직 7년여만인 5일부터 가르치는 일을 다시 시작했다 교재는 꼬박 1주일간의 고민끝에 손수 만들어낸 한글 걸음마용 책.

40여년간 가르치는 일을 업(業)으로 삼아왔지만 이 날만큼은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아침부터 이씨의 머리속을 맴돌았다.

할아버지 선생님 이씨가 한글을 가르치는 학생은 홍정여(73.가명)할머니. 이할아버지는 대구 달서구 신당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살아가는 홍할머니와 지난 5월 첫 만남을 가졌다.

"퇴직 이후 혼자 살면서 두류공원 청소를 해왔는데 우연한 기회에 한 복지관에서 노인봉사단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봤어요.청소보다는 좀 더 체계적인 봉사활동을 한번 해보자는 마음에 복지관을 찾았는데 할머니 한 분을 소개해주더군요"

이할아버지는 대구시 달서구 신당사회복지관 소속 노인자원봉사단인 '실버꿈터' 소속 자원봉사자. 혼자서 봉사활동을 하던 홀몸 노인 20명이 복지관의 주선으로 모여 지난 5월 '실버꿈터'를 꾸렸다.

이 복지관 주변 임대아파트에서 홀로 쓸쓸히 살아가는 노인들이 '실버꿈터' 봉사자들의 봉사대상. 처음엔 쑥스러워하던 임대아파트 노인들도 실버꿈터 노인들의 정성에 이젠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있다.

실버꿈터 노인봉사단의 역할은 다양하다. 이할아버지처럼 교직경력을 살려 한글을 가르쳐주는 사람도 있고 간병인 봉사경력을 이용, 노인들의 마사지를 해주는 봉사자들도 있다.

"남편과 헤어진 뒤 공장에도 다니고 지하철역 청소도 했는데 요즘처럼 보람있는 때가 없어요. 제 몸 추스리기도 바쁜한평생이었는데 내가 누군가를 도와줄 수 있다니 이보다 더한 기쁨이 어디 있겠어요" 노인들의 마사지봉사를 맡은 실버꿈터곽순덕(60.대구시 달서구 도원동)할머니는 봉사활동이 자신에겐 축복이라고 했다.

다양한 봉사경력을 가진 노인들이다보니 모임을 주도하고 있는 복지관측이 따로 봉사활동에 대해 가르칠 필요가 없다. 정해진 일정이 시작되기 1시간전부터 노인들이 모이고 자신들의 경력을 살려 스스로 프로그램까지 만들어온다.

신당복지관 서정혜 사회복지사는 "실버꿈터 노인봉사자들은 임대아파트 홀몸노인들의 집에 찾아갔다가 먹을거리가 없으면 자신들의 주머니까지 털어 식사를 준비한다"며 "노인봉사단의 사연이 알려지면서 그동안 임대아파트에 홀로 사는 부모를 외면해오던 가족들도 부모를 찾는 발길이 잦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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