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도 사람이 그렇듯 시인 서림(46.대구대 교수.본명 최승호)에게 이서국(伊西國)은 세상을 보는 거울이다. 시인에게는 세상이 이서국의 안이고 밖이다. 녹음이 짙은 초여름 이서국 한복판에서 그를 만났다.
청도에서 가장 오래된 부족국가였던 이서국의 옛 도읍터 화양읍 백곡리, 그곳은 자신의 시집 속이기도 하다. 이서국은시인을 구워낸 원향(原鄕)이요 고대의 설화적 환상이 분출하는 시간의 검은 구멍이기 때문이다.
그의 첫시집 '伊西國으로 들어가다'(도서출판 문학동네)는 그렇게 고대의 설화와 역사 그리고 현실이 뒤섞여있다. 역사와 신화로 버무린 상상력으로 빚은 장중한 파노라마다.
나즈막한 구릉으로 둘러싸인 이서국의 옛 터전은 그래서 시집 속 가상공간이지만 오늘의 청도와 시인 자신이 연결된 현실이기도 하다.시인과 청도사람들의 삶이 옛 역사 속으로 파고들고, 지난 역사가 오늘의 풍경에 녹아들기도 하는 몽상의 세계인 것이다.
백곡리 동쪽 둔덕 아래에 고즈넉히 자리한 일취정(一翠亭). 낙락장송이 세월의 강을 넘나드는 옛 정자마당 앞에 선 시인은 신라군에 맞서 싸우던 이서국 사람들의 수호신을 불러냈다.
이화여대 조덕현 교수가 재현한 설치미술. 시집 속 '불개'(이서국으로 들어가다 2)를 모티브로 형상화 한 39마리의 불개는 2천년만에모습을 드러낸 이서국의 찬란한 철기문화를 상징한다. 시인은 구덩이 속 불개를 타고 다시 이서국으로 들어갔다.
이서국과의 해후는 시인에게 파란많은 대학생활과 숱한 생활고 그리고 젊은날의 방황을 뚫고 솟구친 변증법적 출구였다. 삶의 질곡을견디면서 생의 근본자리를 다시짜는 방식을 이서국을 통해 배웠다는 것이다. 순환하듯 진보하는 나선형적 역사관을 지니게 된 것도 이서국과 만난 덕분이다.
혼돈의 급류에 끌려다니며 무릎꿇은 세월. 인생의 한 굽이에 자기만의 내밀한 사유들을 깊숙이 가둬놓은 이서국의 수도.여름낮의 백곡리. 그 적막에서 빠져나와 용암온천 인근 식당에서 동동주 잔을 들던 시인은 어쩔수 없이 또 이서국으로 끌려 들어간다 .첫시집의 첫작품과 마지막 작품 속의 여인 'J'에게서 걸려온 전화.
20여년전 덕절산 사과밭 길모퉁이에서 잘익은 홍옥을 건네던 면사무소 여직원 J. 그때는 숫기가 없어 놓쳐버린, 해가 갈수록가을 저녁 노을로 가슴에 남아있던 '그 여자'. 미국에서 막 귀국했다는 그녀는 시집 속에서 이서국 부족장의 딸이기도 했다.
시인은 시적 알레고리 뿐만 아니라 현실적인 삶도 늘 이렇게 이서국 안팎을 맴돈다. 청도 사람에게 이서국은 끝도 시작도 없듯이.청도에서는 모든 사물이 이서국의 입구고 끝이듯이….
'이서국으로 가는 길은 패랭이꽃 속에 있다'는 시인의 말은 이서국이 오늘도 피고지는 패랭이꽃 같다는 얘기다. 과거의 진행형인 현실. 그 진행선상, 변화의 조짐이 보이는 지점에 시인은 서있는 것이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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