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후 (1)'함께, 하나로'

입력 2002-06-29 14:33:00

◈5천만 '우리'로 한데 묶어

월드컵이 30일간의 여정 끝에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는 지금, 우리의 모습은 한달 전과는 사뭇 달라져 있다. 우리 스스로도 놀라워할만큼 엄청난 변화이다. 그 여러 변화들 중의 하나는 바로 우리 속에서 분출하는 뜨거운 '애국심'을 확인한 것이었다.

대(對) 폴란드전에서부터 시작하여 미국,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터키전에 이르기까지 7게임을 거치는 동안 전국의 거리는 또 하나 기적의 현장이었다. 마치 동화 속의 사람들처럼 온통 붉은 옷의 사람들이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끝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에는 10, 20대가 주류를 이루더니 점차 30, 40대로 번졌고 이내 60, 70대 노장층에까지 불길처럼 번져갔다. 급기야 '군대이야기'와 '축구이야기'를 가장 듣기 싫어한다는 여성들까지 거리로 뛰어 나왔다.

붉은 인파는 한낮의 뜨거운 땡볕도 아랑곳 않았고, 장대비에 온 몸이 젖으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너댓시간 동안을 무사히(?) 견디기 위해 마른 목을 추기지도 않을만큼 지독한(?) 사람들은 다른 말은 다 잊어버린듯 오로지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만을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

엄숙함의 상징인 태극기를 망토로, 치마로, 머리수건으로 멋을 낸 젊은이들이 두 손이 부르트도록 박수치고, 목이 쉬도록 '대~한민국'을 부르짖는 모습은 어른들을 놀라움으로 멍하게 만들었다. 응원 현장의 쓰레기를 말끔히 치우는 그들의 모습은 걸핏하면 '요즘 젊은 것들' 이라는 말로 나무라기 잘하던 기성세대를 오히려 부끄럽게 했다.

그곳에서는 모두가 하나되어 안타까움으로 발을 굴렀고, 두 손을 모아 간절하게 기도했으며, 차마 볼 수 없어 눈을 감기도 했다. 태극전사의 골이 그물을 출렁이게 했을 때는 누구랄 것 없이 공처럼 튀어오르고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을 흘리며 펄쩍펄쩍 뛰었다. 거기에는 나도 너도 없고 오직 '우리'만이 있었다. 이 땅에 살고 있는 4천700만의 '우리' 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수백만의 '우리'들도 동시에 울고 웃었다.

일본 후쿠오카(福岡) 대학에 교환학생으로 가있는 영국 유학생 김유진(23.뉴캐슬대 3학년)양. 영국서 태어나 8살 때 한국으로 왔었다는 김양은 "오랫동안 '나는 영국인'이라고 여긴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으면서 "월드컵 기간동안 TV로 한국팀 경기를 빼놓지 않고 다 보았어요.

빨간 옷을 입고요.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 정말 잘한다고 칭찬할 땐 말할 수 없이 기뻤지요. 내가 한국인이란 사실이 이토록 자랑스러운 때는 없었어요"라고 말했다.

한국팀 경기때마다 응원 현장에 나갔었다는 정우준(27.경북대 예술대.성악전공 4)씨는 "부정부패 등으로 한국이 총체적으로 썩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 나라를 떠나고 싶었던 적이 많았다"면서 "그러나 이번 월드컵을 통해 '우리는 하나'라는 생각에 가슴뭉클해졌고 우리나라도 하면 된다는 무한한 가능성을 보았다"며 뿌듯해했다.

이처럼 이번 월드컵이 우리에게 남겨준 가장 큰 선물은 우리 속에 잠자던 애국심을 일깨워준 점이다. 태극의 건곤감리 4괘는 어느때보다 우리에게 친근하게 다가왔고, 지축을 뒤흔든 붉은 함성 속에서 되찾은 국호 '대한민국'은 '세계 속의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한껏 업그레이드 시켰다.

노진철 경북대 교수(사회학)는 "지금까지 월드컵 대회는 국가 대항전이 흔히 갖게 되는 정치적 코드, 즉 '애국심'을 건드리곤 했는데 이 애국심이라는 코드가 이번에 특히 우리 한국인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면서 "강대국에 대해 콤플렉스를 가졌던 우리가 축구를 통해 강대국들을 잇따라 이긴데 대한 기쁨과 축제의식이 '우리도 해낼 수 있다'는 자긍심과 애국심으로 한껏 고양돼 나타났다"고 풀이했다.

전경옥기자 sirius@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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