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질주 한국축구

입력 2002-06-29 14:49:00

한국축구는 전통적으로 스피드를 강조하는 경기운영을 해 왔다.신체 조건과 개인기가 월등한 유럽이나 남미의 강호들과 맞서기 위해서 한국은 상대 보다 한걸음 더, 그것도 더 빨리 뛰어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빠른 패스가 필수적이었다.

한국은 빠른 패스를 앞세워 83년 멕시코세계청소년대회에서 4강 신화를 달성했고 이후 세계축구계는 '한국축구=빠른 팀'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다.

하지만 한국축구의 발전 못지 않게 세계축구는 더욱 빨리 발전했고 미드필드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중원에서 상대가 패스를 마음놓고 하지 못하도록 하는 압박수비가 정착됐다.

한국축구는 그러나 국제무대에서 부정확한 패스를 남발하며 제자리걸음을 했다.적어도 거스 히딩크 감독이 한국대표팀을 맡기 전까지 한국축구는 '패스는 더 빨라져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히딩크 감독은 "한국선수들은 너무 공격지향적이다. 오로지 빠른 패스만으로 경기를 운영하려고 한다"고 꼬집었다.

이후 한국의 훈련은 좁은 공간에서의 짧은 패스 연습에 집중됐고 한 선수가 볼을 받은 뒤 급하게 패스하면 히딩크는 즉시 연습을 중단시키고 '침착하라'는 불호령을 내렸다.

이같은 훈련이 실전에 반영됐지만 반응이 그리 좋지 못했다.불같은 투지와 총알같은 스피드를 기대했던 팬들의 눈에는 볼을 잡으면 즉시 최전방에 연결하지 않고 이리저리 돌리는 것으로 비쳐졌고 '예전의 한국축구가 사라졌다'는 비판만이 쌓여 갔다.

하지만 히딩크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프랑스의 지네딘 지단같이 뛰어난 개인기를 갖춘 선수가 없는 한국축구에서 플레이메이커를 따로 두지 않겠다"고 공언한 히딩크는 선수 모두가 플레이메이커가 돼 경기의 완급을 조절할 것을 주문했다.

이 주문의 골자는 선수들이 정확한 패스워크를 바탕으로 볼점유율을 높이는 것.이전에 볼을 받으면 전진패스하기에 바빴던 선수들은 동료가 볼을 안정되게 받을 수 있는 상황인지를 먼저 생각하게 됐고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옆으로 또는 뒤로 연결하며 공격의 기회를 만드는 여유를 갖게 됐다.

이번 월드컵에서 브라질(16골)과 독일(14골)이 두자릿수의 골을 기록하며 결승에 진출한 반면 단지 6골을 기록한 한국이 4강에 오른 데는 안정된 패스로 볼점유율을 높인 비결이 숨어 있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6경기를 치르는 동안 롱패스는 798회를 시도한 반면 짧은 패스는 1천989차례나 이뤄졌다.

이는 본선에 진출한 32개팀 중 스페인(2천14회) 다음으로 많은 수치이며 결승 진출국 브라질(1천864회)과 독일(1천558회)을 앞질렀다.

월드컵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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