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환(朴鍾煥)과 히딩크는 닮은 점이 많다. 우선 한국축구를 세계4강으로 끌어올린 신화 창조의 주역이란 점이 그렇다.
히딩크는 월드컵 한국대표축구팀 감독을 맡아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혔던 유럽강호들을 잠재우고 세계4강에 진출했고 박종환은 한국청소년대표팀을 이끌고 지난 83년 멕시코에서 열린 제4회 세계청소년축구대회서 4강에 오르는 위업을 달성했었다.
박종환 감독은 당시 '벌떼축구'라는 새로운 개념의 축구를 세계축구계에 선보였다. 모든 선수가 강인한 체력을 바탕으로 빠르게 그라운드를 누비며 상대팀을 압박하고 제압하는 축구였다. 평소 박종환 감독은 한국축구의 살길은 체력과 정신력뿐이라고 강조했었고 이를 선수들에게도 요구했었다. 훈련강도가 높았다.
선수들에게 마스크를 씌우고 다리에는 모래주머니를 채우는 유격전투 방식까지 동원해 선수들을 몰아세웠다.
체력우위가 상대팀의 제압으로 이어진다는 어떻게 보면 평범한 논리지만 그때까지 어떤 감독도 그렇게 하지는 못했었다. 히딩크 감독의 체력을 앞세운 '압박축구'와 비슷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종환 감독의 선수선발방식도 남달랐다. 당시로 보면 가히 혁명적인 일이었다. 경희대 출신인 박 감독은 축구협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위 축구명문대학 선수들이나 지연을 배제, 실력있는 선수들을 여러차례 시험과정을 거쳐 뽑았다.
그렇게 했을 경우 선수장악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법, 따라서 카리스마도 대단했다. 학연, 지연 안 따지고 선수를 기용하는데야 선수들의 승복(承服)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히딩크 지도력, 축구의 특징은 여러가지를 꼽는다. 여러가지 중에서 우리사회에 던지는 충격적인 메시지는 우선 개방과 공정한 경쟁원칙이다. 끼리끼리 노는 '패거리 한국사회'의 폐해를 방지한 이런 결행은 일종의 경종이다.
체육, 정치 어느 한 곳 할 것 없이 학연, 지연에 따라 끌어주고 선발하는 행태(行態)는 결국 우리사회가 부정.부패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원인제공임을 히딩크가 염두에 두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학연과 지연 등 연고주의를 버린 엄격한 경쟁원칙은 경쟁 탈락자의 불만이 있을 수가 없다.
갈등과 마찰, 잡음이 없는 조직은 무한(無限)의 약동(躍動)이 예고된 조직이다. 히딩크 감독이 김남일, 최진철, 송종국, 박지성, 이을용 등 국가대표팀에 끼이지 못했던 선수들을 발탁한 것은 과거와 다른 '인재 등용'이다.
수평(水平)커뮤니케이션에도 주목한다. 수직커뮤니케이션의 타파는 '이야기가 통하는 조직'으로 거듭나게 했다. 지위가 조금 높다고, 선배라서 되지도 않은 말도 권위가 붙는다면 그 조직의 에너지는 죽은 에너지일 수밖에 없다.
경기 도중에도 자연스럽게 선.후배 선수들간 의견개진이 되면 상대팀 제압은 절반의 성공이다.되돌이켜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원칙대로, 소신대로 못한 우리들이 부끄럽다. 아무리 행실(行實)이 엉터리라도 같은 학교를 나오고, 고향이 같으면 한점 더 주는 수작(手作)을 버리지 못한 자괴감을 느낄 수 있다면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다. 실행 여부는 제쳐두고라도 말이다.
지금 우리는 '히딩크 바람'으로 신명은 나 있다. 우리들에게 주는 일체감과 할 수 있다,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전국이 잔칫집이다. 이렇게 국민들은 한 순간에 감동으로 몰아 넣은 적이 없었다. 이런 결집(結集)분위기를 깨는 듯한 움직임에 우려를 가진다.
노는 축제보다 일하는 축제를
지나침은 모자람보다 못하다고 했다. 정부는 월드컵 이후 프로축구팀이 없는 서울.대구 등 개최 6개도시에 프로축구팀 창단을 유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금 대부분의 프로축구팀이 적자를 면치 못하는 판에 이런 권유가 과연 가능한 일인지, 답답한 일이다.
창단이후의 운영비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지역연고 기업에게 권유한다지만 적자가 뻔한데 창단유도에 응할 기업이 있을 것인지 의문이 간다. 임시공휴일은 또 무엇인가. 이근식 행정자치부 장관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세계여러나라가 월드컵과 관련해 임시공휴일을 지정한적이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경제가 악화된 나라나 독재국가 이외에 어느 선진국이 월드컵 4강에 진출했다고 해서 공휴일을 지정한 경우를 알지 못한다.
'국민들의 피로도 풀겸해서 공휴일 지정…'이라는 말에 어안이 벙벙하다. 노는 축제가 아니라 일하는 축제가 월드컵 효과의 극대화다. 묻는다. 지금이 과연 '3S시대'인가. 박종환, 히딩크 지도력이 주는 교훈을 깨달아야 한다.
최종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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