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뚝배기 문화'

입력 2002-06-26 00:00:00

낚시꾼이 물고기를 잘 낚는 것은 낚시기술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물고기의 건망증 덕분이라고 한다. 뇌를 가진 놈중에 기억력이 가장 처지는 놈이어서 동료 물고기가 바늘에 주둥이가 꿰여 올라가는 꼴을 뻔히 보고서도 미끼를 무는 습성을 못고치기 때문이다.건망증이 개인으로 끝나면 다행이다.

우리의 사회적 건망증, 집단건망증은 병원에 가봐야 할 정도다. 끝없이 되풀이 되는 폭발, 붕괴, 수해, YS 아들 구속된걸 뻔히 보고서도 또 되풀이 하는 부패건망증…. 당장 축구열풍 때문에 우리가 잊고 있는건 또 무엇들일까?

○..근 한달동안 신문.방송들도 온통 월드컵으로 도배하다시피 하니 사회가 통째 마비된 느낌이다. 이거 이러다가또 '냄비기질'이 발동하는 것 아닌가 스스로를 추스려 봐야할 것 같다. 팔자에 없을 것 같던 4강까지 오르다보니 우리에겐'히딩크'란 영웅이 생겼다.

'대~한민국'의 첫 영웅이다. 16강에 오르자 붉은악마들은 그에게 '무기감독(無期監督)형'을 선고했다. 혐의도 갖가지, 소란야기죄에다 수면방해.영업방해.진료방해 등 갖가지 익살스런 혐의가 첨부됐다.

히딩크를 귀화시켜라, 동상을 세우자, 그것도 모자라 대학들은 명예박사, 정부는 명예국민증까지 주겠다고 흥분했다. 이 즉흥적인 약속들이 얼마나, 제대로 지켜질까.국민영웅 칭호를 들은 히딩크는 정작 "나는 축구감독일 뿐"이라고 했고, 악마들은 이 '겸손'에 또 열광이다.

○..그러나 히딩크도 한때는 씹혔다. 작년 컨페더레이션컵에선 프랑스에 5대0, 체코 전지훈련서도 5대0, 그래서 '오대영감독'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축구협회에서도 씹히고, 시합앞두고 스파르타식 체력훈련만 한다고 여기저기서 씹혔다.

그래서 히딩크는 한국의 냄비체질을 대충은 안다. 그리고 붉은악마들은, 우리 국민들은 너무 뜨거워져 있다. 이런 저런 상황과, 계속 남아달라는 팬들의열망사이에서 히딩크는 이제 고민하게 될 것이다.

○..월드컵의 막다른 길목에서 다시 생각해봐도 우리 '붉은악마'들의 길거리응원전은 참으로 멋졌다. 폴란드전에서 50만명으로시작됐던 응원이 마침내 700만으로 순식간에 급증하면서 붉은악마는 전세계에 단결과 질서의 상징으로 비쳤다.

그리고 그것이 관(官)주도가아닌, 온전히 민(民)주도의 단결이요 질서였다는데서 매우 뜻깊다. 문제는 그같은 성숙됨이 88올림픽때처럼 '반짝문화'로, 월드컵이 끝나면서 냄비 식듯 식어버리는 것 아니냐는 데에 있다.

88올림픽을 계기로 정착된줄 알았던 질서.환경.예절의 문화는 이후 넘치는 쓰레기, 교통위반, 남의 사정 아랑곳 않는 휴대폰 소음 등에 묻혀버린게 그간의 사정이다. 그때 그 성숙된 시민의식을 붉은악마들을 통해 다시금,그리고 '뚝배기'처럼 오래오래 맛보고 싶은 것이다.

강건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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