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돌아 본 히딩크 감독 18개월

시드니올림픽 8강진출 실패, 제12회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3위.한일월드컵을 2년 앞둔 2000년의 한국축구계는 잇따른 부진으로 위기감이 팽배해 있었다.

부진한 성적도 한 요인이었지만 월드컵 본선에서 맞붙을 강호들과 상대하기에는 너무도 빈약한 경기력이 더 문제였다.

급기야 대한축구협회는 이용수 기술위원장 체제로 기술위원단을 개편하고 외국인 감독을 영입한다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98년 프랑스월드컵 본선에서 한국에 0대5의 참패를 안겨준 네덜란드를 이끌던 거스 히딩크. 그는 2000년 12월17일 김포공항에 첫 발을 내디디면서 대표팀 사령탑에 올라 2002월드컵까지 18개월동안 한국축구 피땀의 역사를 함께 했다.

▲탐색기(2001년 1~4월)=히딩크는 감독부임 후 첫 출전한 홍콩 칼스버그(24·27일)에서 노르웨이에 2대3패, 파라과이전 승부차기 6대5의 승리를 거둔다.

두바이 4개국친선대회(2.8~14)에서 히딩크는 모로코와 1대1로 비긴 뒤 홈팀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을 4대1로 완파했으나 덴마크전은 0대2로 패해 '유럽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어 이집트 4개국대회(4.19~27)에 출전해 이란과 이집트를 각각 1대0, 2대1로 물리치고 우승했다.

▲시련과 도전(2001년 5월~2002년2월)=월드컵 리허설이라는 기치 아래 치러진 컨페더레이션스컵(5.30~6.10)에서 한국은 98월드컵 챔피언 프랑스에 0대5의 참패를 당한다. 수비벽은 상대의 빠른 돌파와 개인기에 여지없이 무너졌고 공격다운 공격 한번 펼쳐보지 못했다.

긴 여름 휴가로 구설수에 오르기까지 한 히딩크 감독은 8월 네덜란드 등을 비롯한 유럽을 돌며 전지훈련을 실시하고 체코와의 평가전을 치렀으나 결과는 또 다시 0대5의 참패. 이 때부터 회의론을 넘어서 '오대영(5대0)'이라는 별명까지 따라 붙었다. 9월에 나이지리아와 가진 2차례의 평가전에서 1승1무의 성적을 거뒀으나 쉽게 무너지는 수비벽과 활로를 찾지 못하는 공력라인은 여전히 문제로 남았다.

10월 대구전지훈련을 기점으로 히딩크는 뚜렷한 색깔을 입히기 시작했다. 대표팀은 주 전형으로 확정한 '一'자 스리백을 바탕으로 수비가 안정을 찾은 가운데 공격-미드필드-수비간의 거리를 좁히는 '콤팩트사커'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11월 8일 아프리카의 신흥 강호 세네갈전에서는 0대1로 패했지만 98년 월드컵 3위팀 크로아티아(11일, 13일)와는 1승1무. 성적보다는 수비라인이 안정을 찾기 시작했고 젊은 피 이천수와 최태욱, 박지성 등의 급성장은 월드컵에 대한 희망의 빛을 던져줬다.

12월 미국과의 평가전에서 1대0으로 승리한 이후 올초 1월과 2월 북중미골드컵(1.20~2.3)과 우루과이와의 평가전(2.14)까지 2무4패의 참담한 성적에 그쳐 불안을 안겼다. 더구나 이때부터 히딩크가 시작한 강도높은 파워프로그램에 선수들이 적응하지 못해 황선홍을 시작으로 최태욱, 이천수, 박지성, 이민성 등 공수의 주력선수들이 줄줄이 부상으로 드러누웠다.

▲발전과 완성(2002년 3~6월)=3월 유럽전지훈련에서 치른 세차례 평가전(1승2무)을 통해 홍명보(포항)라는 수비의 핵을 다시 찾아 무실점 행진을 이어가며 회생의 기미를 보였다. 이 시기에 히딩크는 홍명보, 최진철, 김태영으로 탄탄한 수비진을 구축했고 안정환이 가세하면서 날카로움이 더해진 미드필드라인, 3월20일 핀란드전서 2골을 작렬시킨 황선홍의 부활 등 몇가지 희망의 단서를 발견했다.

또 본선상대인 폴란드, 미국, 포르투갈의 전력이 평가전을 통해 속속 얼굴을 드러낸 이때 히딩크 감독이 내 건 화두는 의외로 '체력'이었다. 월드컵을 약 3개월 앞뒀던 이때부터 히딩크 감독은 베르하이엔 레이몬드 피지컬 트레이너를 팀에 합류시킨 가운데 본선에 맞춰 체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리기 위한 혹독한 트레이닝에 들어갔다.

회복시간 단축, 지구력강화 등을 위해 무모하리만큼 집착했던 히딩크 감독은 뒤이어 줄줄이 열린 A매치에서 몰라보게 달라진 대표팀을 만들어 내며 자신의 길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세계적인 수준의 체력과 압박능력을 갖게 된 대표팀은 4월20일 코스타리카에 2대0으로 완승했고 4월27일 중국과 득점없이 비기며 숨을 골랐지만 지난달 16일 스코틀랜드를 4대1로 대파해 월드컵 본선을 향한 준비를 착실히 해나갔다.

지난달 21일 종가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서는 조금도 물러서지 않는 압박능력을 보이며 1대1 무승부의 개가를 올렸고 26일 프랑스를 맞아 2대3으로 재역전패했지만 날카로운 배후침투와 세트플레이로 2골을 잡아내 챔피언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이로써 월드컵 본 무대에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준비를 모두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