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의 '축구하는 스님들'

입력 2002-06-11 14:28:00

중국에 '소림축구'가 있다면 한국에는 '해인축구'가 있다. 중국의 소림축구와 티베트의 컵(Cup)은 영화 속의 가공된 이야기이지만, 해인사의 축구는 논픽션이다. 한국축구가 월드컵 출전사상 첫 승을 거두며 온 나라가 축구열풍에 휩싸이자 청정수행도량인 산사의 승려 축구팀도 가벼운 흥분을 숨기지 못했다.

그것도 역대의 종정을 배출할 만큼 수행가풍이 준엄한 합천 가야산 해인사에 축구팀이라니. 3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해인사의 승려 축구는 산불과 인연이 있다. 절 뒷산에 산불이 나자 수많은 강원 학인과 선방 수좌 스님들이 현장으로 달려갔지만, 숨이 턱에 찬 스님들이 산불 진화는 엄두도 못냈던 것.

따라서 당시 주지인 영암 스님이 산중 어른들의 동의를 얻어 체력 보강을 위한 축구가 시작됐고, 지금껏 매주 토요일 오후 울력과함께 장경각 서쪽 구장에서 공식적인 연습시간을 가져오고 있다.

강원 스님들간 반별 대항 형식으로 지속돼온 해인 축구팀은 오랜 연륜만큼이나 기량도 뛰어나 사찰 주변 지역의 실업팀과 직장 축구팀 등과 자웅을 겨룰 정도다. 정식 축구단이 아니라 임시팀으로 구성되지만 사관생도·연예인 축구팀과의 경기를 가진 적도 있으며 매년 단오가 되면 지역의 축구 동호회와 정기전을 가지고 있다.

강원의 한 학인스님은 "사찰내 도서관인 경학원에서 TV를 통해 우리나라와 폴란드간의 경기를 봤다"며 "아무리 산중이지만 올해는축구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여느해와는 다르다"고 털어놓았다.

세간과 출세간 사이의 축구경기. 축구하는 승려를 보는 일반인들의 의아심에 대해 해인지 편집장 원철 스님은 "축구야말로 가장 불교적인 운동"이라고 강조한다. 원만한 대중생활을 위한 화합과 협력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방편이라는 것이다.

전국민을 하나로 엮은 축구열풍을 보면서 올 단오(6월 15일) 정기전을 앞둔 해인사 스님들은 참구해야 할 또하나의 화두가 생겼다.'피버노바'·'둥근 공…'. 그것은 월드컵 시즌을 맞아 인류의 화합과 지구촌의 원융(圓融)을 염원하는 승가의 또다른 상징일 따름이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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