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바로보기-지선, 대선구도로 몰지말라

입력 2002-06-10 00:00:00

이회창, 노무현 후보 보십시오. 두 정치 지도자의 '막말'이 화제입니다. '빠순이' '깽판'. 맥락을 제외한 채 단어만 놓고 보면 민망한 구석이 없지 않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말씀의 의도입니다. 두 분은 그런 선정적인 말씀을 하시면서 이번 지방선거를 대통령선거의 전초전으로 몰아가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막말' 자체보다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두 분께 저도 '막말'로 한 번 여쭙겠습니다. 지방선거가 대통령 선거의 '시다바리'입니까? 제발 지방선거를 대통령 선거의 볼모로 잡으려 하지 마십시오. 지방정치가 자율성을 상실하고 중앙정치의 아류가 되는 한 지방의 시대란 빛 좋은 개살구이기 때문입니다.

지방정치가 중앙정치의 노예가 되었기 때문에 얼마나 엉터리 같은 일들이 일어났습니까? 영남에는 한나라당이 호남에서는 새천년민주당이 '막대기를 꽂아도' 당선이 된다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지방자치단체의 집행부와 의회가 하나의 정당에 의해 지배되었습니다. 정치적 '근친교배'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런 조건에서 지방정치가 어떻게 제구실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지방선거는 지역의 살림살이를 맡을 사람을 뽑는 선거입니다. 이 생활정치를 중앙의 패거리 정치로 오염시키지 마십시오. 제발 생활정치를 대통령 선거의 '구도'로 난도질하지 마십시오. 이회창, 노무현 두 분의 훌륭한 정치 지도자께서는 이번 지방선거가 지방화 시대를 성찰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지방자치를 다시 실시할 때 우리는 지방화가 시대정신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로부터 강산이 한 번 변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절망뿐입니다. 지방자치의 실시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의 지방은 모두 붕괴하고 있습니다. 돈도 사람도 지방을 떠나고 있습니다. 지방에서는 어떤 희망의 단서조차 찾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두 분께서는 지방화의 시대가 왜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중앙집권 체제가 요지부동이기 때문 아닙니까? 권력 따라 돈이, 돈 따라 사람이 동심원을 그리며 서울을 중심으로 모여 있는 것이 우리 나라의 현실입니다.

이번 지방선거는 쇠퇴하고 있는 지방의 장래에 대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는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치지도자들은 틈만 있으면 이 선거를 대통령 선거로 호도하고 있습니다. 대선 논리에 지역 쟁점은 뒷전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지방자치가 제 기능을 하려면 지방정치가 자율성을 가지도록 하는 지방분권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방분권 없는 지방자치는 공허(空虛)하고 지방자치 없는 지방분권은 맹목(盲目)이다).

이회창, 노무현 후보 보십시오. 이번 지방선거를 대선의 전초전이 아니라 지방분권의 전초전이 되도록 노력해 주십시오. 그러면 역사에 남을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이회창, 노무현 후보께서는 부디 중앙정치와 지방정치가 수직적이고 종속적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구태와 과감하게 절연해 주십시오. 우선 지방 선거 판을 찾아다니면서 정권교체나 정권재창출을 외치는 일 따위는 그만 두십시오.

김태일〈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지방분권운동 대구경북본부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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