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장을 차려 산책길에 나선다. 신선한 새벽공기를 마시면 상쾌한 기분과 함께 정신이 한결 맑아진다. 앞산순환도로를 건너 심신수련장까지 천m의 산책로 가로등은 새벽잠에 취해 아직도 졸고 있다.
왼쪽으로 멀리 내려다보이는 시가지에는 네온사인과 외등이 꽃밭을 이루고 신천대로 가로등은 열병을 받는 병사들처럼 쭉 늘어서 있다. 수련교를 지나 성불사에는 벌써 누군가가 소원을 빌었는지 미륵불 앞에 촛불이 켜져 있다.
휴게소 옆에 있는 인공폭포에는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져 나온다. 언덕길을 올라 제1운동시설에 이르면 맨손체조로 몸을 푸는 사람, 철봉에 매달리는 등 갑자기 활기찬 광경들이 벌어진다. 바로 오르면 토굴암과 제1약수터로 가고, 왼쪽으로는 용두산 토성이 나온다.
산새들은 벌써 아침 인사를 한다. 동쪽으로 확 트인 시야에 멀리 수성못의 맑은 수면이 여명을 받아 반사되고, 신천의 강줄기가 거대한 용틀임을 하면서 유유히 흐르고 있다. 시내의 크고 작은 건물과 아파트 숲들이 서로 키 자랑을 하고 있다.
◈청산과 유수의 가르침
여기서 돌아 나오면 청소년을 위한 신체 단련장이 있다. 토양과 식물과의 관계,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대첩,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도(圖)를 세워 놓고 있다. 여기서 제3약수터로 가는 길에는 숨이 차고 등에 땀이 제법 밴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은 한결같이 밝고 의욕에 차 보인다.
각계각층,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뇌졸중으로 반신불수가 된 분을 수하가 부축을하며 운동을 시키는가 하면, 노부부가 손을 잡고 산책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좋다. 걷는 운동은 폐활량이 좋아지고 혈액순환이 잘되어 고혈압과 뇌졸중을 예방한다.
장운동이 좋아져 식욕이 증진되며 당뇨병도 낫게 한다. 제3탕 길목에는 나 혼자 즐기는 폭포가 있다. 옛날 군의관으로 설악산 근방에서 근무할 때 내설악의 대승폭포와 12선녀탕을 자주 찾은 일이 있었다.
지금 이곳은 그리 크지는 않으나 비가 온 후에는 바위 사이로 굽이쳐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제법 장관을 이룬다. 바위에 걸터앉아 영남시우회(嶺南時友會)에서 연습하던 나옹대사(懶翁大師)의 시조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 가라하네" 시조창을 불러본다. 그렇다.
◈탐욕과 성냄 벗어놓고...
산은 몇 십억겁(十億劫)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고 묵묵히 그 자리에 있으면서 세상 모든 것을 포용한다. 일찍 공자께서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智者樂水 仁者樂山)고 했다.
또 "우러러 보아 하늘에 한 점 부끄럽지 아니하고 굽어보아 사람에게 부끄럽지 않은 것(仰不愧於天 俯不 於人:孟子)은 군자의 세가지 즐거움(君子三樂) 중에 둘째로 손꼽는다. 물은 담은 용기에 따라 모양을 쉽게 바꾸고, 낮은 곳으로 절로절로 흐르는 "순천자의 지혜(順天子智慧)를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여기에는 청산이 있고 티 없는 하늘이 있으며, 맑은 물이 흘러 조화를 이루니 마음을 다스리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다. 청산과 유수가 어리석고 미욱한 인간들에게 많은 지혜와 가르침을 준다.
"네 영혼이 고독하거던 산으로 가라, 깊은 영감을 원하거던 산을 찾아가라"고 했다. 봄에는 벚꽃, 개나리, 진달래가 만발하고, 여름이면 짙은 녹음으로 그늘이 지니 도심지보다 2, 3℃씩이나 낮아 더위를 식혀 준다.
개울물에 발을 담그면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한여름 밤 더위로 잠을 못 이룰 때 이곳의 산책로는 가로등 불빛이 나무그늘에 흔들리고 그 아래 연인들끼리 사랑을 속삭인다. 또 가족단위로 더위를 식히면서 삼삼오오 여름밤의 정취를 마음껏 즐기기도 한다.
가을이 되면 만산홍엽(滿山紅葉)으로 장관을 이루며, 겨울에는 초목들에게 눈꽃이 핀다. 비가 올 때는 우산을 받쳐들고, 눈이 오면 함박눈을 맞으며 걷는 재미 또한 일품이다. 이와 같이 앞산공원이 우리들 가까이 있으니 시민들의 건강과 행복을 주는 천혜(天惠)의 선물이며 귀중한 재산으로서 우리가 아끼고 가꾸어야 하겠다.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