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주일에 닷새 일하고 이틀 쉬게 된다고들, 여간 야단이 아니다. 아직은 금융계에 한정된 일이지만 다른 업종의 근로자들도 기대에 부풀어서 푸른 내일을 미리 내다보고 있는 모양이다.
백 번 좋은 일이다. 근로며 노동이 갖는 생산성에는 당연히 휴식의 관여한다는 점에서도 '주 5일 근무제'는 반길 만하다. 하지만 지금 당장으로는 뭔가 좀 불안하고 불길한 낌새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모처럼 좋은 제도에 미리 초를 치고 흙탕물을 끼얹는 듯이 보이는 징후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느껴지기 때문이다.
신문들 보도에 의하면, 먼저 관광-레저 업계가 팔을 걷고 나섰다고 한다. 국내외로 새로운 관광객이 증가할 것에 대비해서 잔뜩 가슴을 울렁대고 있는 것 같다. 뿐만 아니다.
백화점이나 유통업계는 주말 이틀에 걸쳐서 들이닥칠 손님의 물결에 미리 가슴 설레고 있는 모양이다. 그래서 매주 이틀씩 쉬게 된 근로자들이나, 이틀씩 수입을 늘려 잡게 될 그 방면 업계나 다같이 장단맞추어서 들떠 있는 모양이다. 그야말로 지금으로서는 떡 줄 사람과 김칫국 마시는 사람의 궁합이 척척 들어맞는 듯이 보인다.
여기 바로 문제가 잠복해 있다. 모처럼 쉬고 놀고 하는 것이 뭔지 크게 뒤틀릴 흉한 조짐 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건 십분 미리 미리 경계해야 할 일이다. 노는 것, 쉬는 것에도 질이 다르고 품격이 다르고 가치가 다른 게 있다는 것을 이제 바야흐로 '주 5일 근무제'를 앞두고 있는 이 시점에서 되짚어 보아야 할 것이다. 논다고 다 같은 게 아니고 쉰다고 다 동질은 아니다.
'노는 꼴 보면 사람 꼴이 드러난다'고 한 옛말에 이제 마음 좀 써야 한다. 한자의 유(遊)에는 선유(仙遊)의 유가 있고 청유(淸遊)의 유가 있다. 그러기에 공자가 '인(仁)에 의지해서 예(藝)에서 유(遊)한다'고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는 정 반대로 유에는, 유탕(遊蕩) 또는 탕유(蕩遊)의 유도 있다. 탕은 방탕과 탕진의 바로 그 탕이다.
그런가 하면, 한자의 쉴 휴(休)에는 검소, 기쁨, 넉넉함 이외에도 아름다움이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노는 것이 예(藝)에 가깝고 쉬는 것이 아름다움이요 검소함이기를 옛 사람들은 바란 것이다. 오늘의 우리들에게 그건 가슴 저린, 뼈저린 교훈이 되어야 한다.
서구 쪽을 살펴보아도 놀고 쉬는 것에서 구태여 쇼핑과 논다니 짓이나 놈팡이 짓만을 연상할 수는 없다. '레저, 테이스트, 호비'. 혀 꼬부라질 말만 늘어놓아서 꺼림칙하지만, 이건 모두 놀고 쉬고 하는 것과 관계 있는 영어 낱말들이다.
물론 이들은 서로 물고 있어서 따로 따로 잘라 내어서 따지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레저'라면 원칙적으로 일에서 풀린 한가함이지만, 이에는 유유자적(悠悠自適)하면서 즐기는 자유로운 시간이라는 뜻이 포함된다.
'테이스트'는 취미라고만 하고 말기에는 아까운 말이다. 즐거움, 기쁨 등을 누리는 높은 식견, 품위 있는 감각이며 판단력 등을 의미할 수 있는 낱말이다. 심미안(審美眼)도 당연히 이에 포함된다. 한편, '호비'라면 여가를 뭣인가 즐겁고 창조적인 일에 바치되, 그것이 결국은 그 개인의 생활과 사회 문화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활동을 의미한다.
이들은 논다니로 놀아나고 놈팡이로 놀아치고 하는 것과는 별로 관계없다. 이에서 우리들은 한국말로는 별 수 없이 '쾌락주의'라고 할밖에 없는, '에피큐리어니즘'이 정신의 고요와 지적인 만족감까지를 의미하고 나아가서는 윤리적 즐거움까지를 지칭했다는 것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사람은 참 성가시다. 즐거움이나 기쁨에도 질의 높낮이가 있기 때문이다. 쾌락에도 인격과 품성이 관여하기 마련이다.이제 우리 한국이 즐거움과 기쁨에서도 좀 무게가 나는 진중(鎭重)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팔랑개비 사회는 그만두어야 한다.
그래서 '주 5일 근무제'가 새로운 '노는 문화', '쉬는 문화'를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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