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모두가 작가인 사회

입력 2002-05-22 14:27:00

전문적인 문필가가 아닌 이상, 일반인들의 삶은 어떤 의미에서는 독자로서의 삶이라고 할 수 있다.

어릴 적부터 제도교육을 통해 이 사회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많은 책을 읽으면서 자라며, 성인이 된 이후에도 자신을 계발하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책을 읽어야 한다.

한편으로 사람들은 누구라도 작가가 될 수 있다. 비단 문학의 영역이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의 경험에 대해 그리고 세상에 대한 나름대로 할 말이 없는 사람은 없을 텐데, 그런 말에 대한 욕망이 현실화되는 순간 사람은 독자의 위치에서 작가의 위치로 전환된다. 이렇게 보면 사람의 한 살이는 다시 읽기와 쓰기가 끝없이 반복되는 형태의 삶이라고 정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쓴다고 하는 창조적인 일은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일정한 읽기가 수반되지 않는 한 대개 무의미하고 가치 없는 글이 되고 만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에 우리 사회는 남들(의 글)을 읽는 사람보다는 저마다 쓰려고(말하려고) 하는 사람만 늘어가는 것 같다. 비단 글쓰기의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삶의 전반적인 방식에 있어서 말이다.

오늘날 학생들은 교사들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기득권층은 소외계층의 불만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의사와 약사도 자신들만이 옳다고 여기고, 여당과 야당 또한 상대방의 말은 외면한 채 자신들의 할 말만 하기에 바쁘다.

정치적 사건을 둘러싼 법정 공방 또한 사정은 마찬가지다. 우리 주변의 이런 현실을 저마다 자신의 글과 말을 창조해내는 작가들만의 사회라고 한다면 과언일까. 독자의 수는 제한되어 있는데 작가가 넘쳐나는 공간이 한 군데 있다. 바로 정신병원이다.

그곳에서는 치료의 목적상, 작가인 환자가 내뱉는 모든 말들을 의사가 독자가 되어 꼼꼼하게 읽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환자가 내뱉는 말은 본인에게는 창조적인 말일지 몰라도 의사에게는 한갓 치료의 단서에 불과한, 허언(虛言)이기가 쉽다.

그런 의사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면 어떨까. 독자로서의 한국인의 운명이 거기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을까.

김경수(계명대 교수.문예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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