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증오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작년 9.11 테러사건 그리고 미국의 보복.그리하여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세계 모든 국가에 대하여 '우리 쪽에 서는가, 테러리스트쪽에 서는가' 태도를 분명히 하라고 하는 이른바 '부시 독트린'을 내걸고 금년을 테러와의 전쟁의해라고 선언했었다. 이런 시대상황 속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유혈충돌이 격화됐다.
이 참극에 대하여 정전을 중개하려고 중동을 다녀온 파월 국무장관을 맞은 기자회견에서 부시 대통령은 이스라엘의"샤론 수상은 평화의 사람이다"라고 발언하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미국의 백악관은 '자폭테러는 의도적인 살인'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으니까 그것은 당연한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한편 팔레스타인 측 복병의 기습으로 열세명의 병사를 잃은 이스라엘 군은 요르단강 서안 팔레스타인 자치구 안에 있는 제닌 난민캠프를 습격해서 그 중심부를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500명이나살해했다는 것이 팔레스타인 쪽의 주장이다.
어떤 팔레스타인 여성의 증언에 따르면 "몸이 불편한 남자가 거리에서 사살되었다. 부근 사람들이 시체를 운반하려고 하자 이스라엘 군이 '그대로 두라'고 명령했다. 그리고는 전차가 그 시체 위를 몇 번이나 오갔다"이 제닌사건에대한 유엔의 현지 조사단은 이스라엘 군에 의해서 입국을 저지당하고 있다.
이것이 4월 말 일인데 5월에 들어서서 5개월 동안이나 갇혀 있던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이 풀려났다고 신문은 보도했다. 생각해보면 먼 동쪽 동북아시아의 우리는 월드컵이라고 축제분위기에들떠 있는데 중동에서는 이처럼 인간의 비극이 벌어지고 있는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사태라고 하겠다.
우리는 다만 멀리서 1세기 전 영국의 작가 키플링이 한 말과 같이 '커다란 게임이 끝나는 것은 모두가 죽었을 때다'라고 탄식 어린 경고만 발해야 하는 것일까.
1948년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들을 내쫓으면서 유대인의 나라를 건설한다고 여념이 없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나치 하에서 유대인이 학살당한 슬픔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이 시오니즘 운동의 앞날에 대해서 퍽 염려했다.
본 난에 이미 몇 번이고 인용한 하나 아렌트 같은 지식인은 자신이 유대인임에도 불구하고 심한 우려에서 국가로서의 이스라엘을 세우는 데 반대했다. 유대인은 인종이 다르다고 학대를 받았다. 그런데 이제 유대인 스스로가 인종이 다르다고 아랍인들과 싸우고 그들을 추방하려는 것인가. 그것은 나치의 박해를 받으면서 그 독일의 잘못된 내셔널리즘을 배운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비판하면서 아렌트는 새로운 세계를 전망하려고 했다.
'한 인간은 어떤 민족 속에서만 사람들 사이에 있는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 쇠약해져서 죽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러나 다른 민족과 협조하는 민족만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대지 위에 우리가 함께 만들어서 관리해 갈 인간 세계를 세우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그리하여 아렌트는 유대인이 그들의 신화 속에서 '인류'를 발견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그 인류를 망각했을 때 나치의 비극이 일어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아렌트가 이상으로 삼은 유대인의 삶이란 유대인만의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차라리 유럽 각지에 흩어져서 '유럽에서 압박을 받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국가적, 사회적 자유를 위한 투쟁에 연대하면서 자신들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계속하는 피압박 민족의 대표자'가 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비현실적인 이상주의라고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렌트는 그 자신이 나치스에 추방당하여유랑하면서 인종주의 또는 한 민족이 한 국가를 이루고 그것을 절대화하면서 다른 민족을 배격하는 20세기적인 발상은 이제 단절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증오. 머지 않아 6.25 52주년을 맞이할 것을 생각하면서, 아니 그보다 앞서 6.15 공동선언 2주년을 맞이할 것을 생각하면서 어쩐지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문제는 우리 민족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사실 그것은 21세기 인류 전체가 당면한 문제라고 해야할 테니까.
〈한림대.일본학연구소 소장 지명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