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기말고사 시험 감독으로 강의실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다. 한 학생이 자기 윗주머니에 커닝 페이퍼(커닝은 사실 속이는 것(cheating)을 말하는 것이다)를 넣어둔 채 시험을 치르고 있었다.
깊숙이 넣어두어야 할(?) 커닝 페이퍼가 위로 살짝 올라와 있어서 눈에 띈 것이다. 그래서 그 학생에게 커닝 페이퍼를 달라고 했다. 그러나 커닝 페이퍼가 없다고 잡아떼는 것이었다.
그래서 "분명히 있으니 내어놓아라"고 했다. 몇 번인가 없다고 더 잡아떼더니만 '알겠습니다'하는 표정을 짓고는 커닝 페이퍼를 내어놓았다. 그런데 아뿔싸! 윗주머니의 커닝 페이퍼가 아니라 자기의 오른 쪽 엉덩이 밑에 있는 것을 꺼내어 놓는 것이었다. 속으로 '어라!'하고는 "또 있어, 또 내어놓아라"했더니, 그 다음에는 왼쪽 엉덩이 밑에 있는 것을 내어놓았다.
그 때 세 번째로"또 있는데"하니까 "이제는 진짜 없습니다"하는 것이었다. 정작 꺼내어야 할 윗주머니의 것은 깜박한 것 같았다. "또 있으면 F학점을 주어도 좋으냐?"하니까 "예" 하길래, 윗주머니에 있는 것을 꺼내들었다. 강의실은 한 바탕 웃느라고 야단법석들이었다. 물론 그 뒤 무사히 졸업을 하긴 했다. 그 학생이 혹시 이 글을 읽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때 그 사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사람에게는 양심의 소리가 있다는 것이다. 남은 모르지만 자기는 알고 있다는 것이다. 남에게 속이고 못된 짓을 해도 자기 자신에게 들리는 소리가 있다는 것이다.
유명한 사도 바울은 로마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양심을 거부해도, 양심을 속이고 핑계를 댄다고 해도, 그것이 결코 정당화 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양심의 소리는 거역할 수 없는 것이다.
경일대 이춘길교수.섬유패션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