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복지재단 대구후원회장 정한영 변호사

입력 2002-05-20 14: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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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40대들은 뿌리뽑힌 세대다. 외환위기 이후 사회 경제적으로 그들은 가장 큰 희생을 치렀다. 윗 세대에 치이고뒷 세대에 밀린 샌드위치 신세였다. 그들의 성장과정도 불우했다. 군사정권의 서슬아래 숨을 죽여야 했다. 또 윗 세대처럼 보릿고개는 겪지 않았지만 그들 대부분은 신산한 애옥살이 삶을 살았다.

정한영 변호사(45). 그 역시 어린 시절 주린 배를 수돗물로 채우며 자랐다. 굶기를 밥먹듯 했다. 때문에 그는 작달막하고 다소 마른 체구다. 그러나 몇 마디만 나눠보면 굳건한 심지와 강단이 느껴진다.

게다가 시련을 딛고 자수성가한 여느사람과 달리 그는 마음이 부자다. 어려울 때 도움 준 '고마운 분'들의 은혜를 잊지 않고 지역 사회에 되갚고 있다.그는 불우 이웃들과 결연을 맺고 그들을 돕는 한국복지재단 대구지부 후원회장이다. 후원금을 많이 내 그저 얻은 직함이 아니다.9년전부터 후원회원으로 활동했고 회장을 맡은 지 3년째다.

그가 '불우 이웃들의 친구'로 나선 것은 남다른 사연이 있다. 그도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지역 복지단체의 도움을 받고 성장했다. 보은을 위해 '따뜻한 손'을 내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3월 기자가 그를 찾았다. 그러나 그는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했다.

3시간동안 설득했지만 실패했다. 겸양이 아니었다. 내세울 만큼 봉사한 게 없고 그 시절 고생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있느냐는 이유에서였다. 또 기사화할 경우 미화(美化)되기 쉬운 점도 꺼렸다.자신도 어려운 처지이면서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일반 회원들 보기가 민망스럽다는 것이다. 그런 그가 기자를 다시 만난 건 외환위기 이후 지역경제 사정이 나빠지면서 크게 줄어든 지역 후원회원을 다시 모집하기 위해서였다.

먼저 그의 참담했던 어린 시절 얘기부터 들었다. 그는 9살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고향 고령 개진초교 교감으로 재직하던 부친이 43세 때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가세가 급격히 기울자, 그의 6형제(누나 셋, 남동생 둘)와 어머니는 고령을 떠나 대구로 나왔다. 이 때부터 대구 변두리 달동네 달세방을 전전하며 모진 고생을 시작했다.

"밥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두 누나가 가출한 것도 이 무렵이었어요. 보리쌀 한 홉으로 어린 네 남매가 간장을 반찬으로 사흘간 나눠먹었던 적도 있어요. 어머니는 굶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칠성시장에서 어물 좌판을 하던 어머니 장사가 시원치 않으면 보리밥마저 얻어먹기가어려웠어요. 이 때 한 캐나다인이 지역 복지기관을 통해 결연을 맺고 매달 후원금을 보내줘 허기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굶기를 밥먹듯하는 살림인데도 어머니는 장남인 그만은 학교에 보냈다. 어렵게 중학교를 졸업한 뒤 고교(경북고)에 입학했으나 입학금 2만6천원이 없어 진학이 어려웠다.

어머니가 친척들에게 손을 벌렸으나 '공장에나 보내라'는 대답을 들었다. 중학교 2학년때 은사의 도움으로 어렵게 입학금을 마련했다.이어 이 은사의 주선으로 74년 2월 그의 사연이 매일신문에 보도돼 1년간 독지가로부터 학비를 지원받았다.

그러나 독지가의 사업이 기울면서 도움이 끊겼고고교 졸업을 몇달 앞둔 시점에 그도 집을 떠나 서울로 상경했다. 정비공장과 장롱공장 등을 6개월동안 전전했다. 여기서 가출했던 둘째 누나를 만나고 누나의도움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해 대학에 들어갔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지난 90년부터 대구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제 코가 석자여서 3년간은 주변으로 눈돌릴 여유가 없었어요. 형편이조금 좋아지면서 제게 도움을 준 분들을 찾았고 그 은혜를 대물림해야 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제가 도움을 준 아이들이 그 불씨를 끄지 않고 이어나가는 것입니다".

그가 후원회장으로 있는 한국복지재단 대구지부(053-964-3334, 3054)의 후원회원은 5천600여명으로 대구거주 회원과 서울 등 전국에 흩어져 있는 회원이 절반씩이다. 피후원자는 4천500여명으로 홀몸 노인, 소년소녀가장, 장애인들로 모두 대구에 살고 있다.

그는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에게 금전적 후원도 필요하나 더욱 중요한 것은 꿈과 용기, 강인한 정신을 길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가난의 대물림이 반복되는 상황에서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이 쉽게 좌절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부모 잘못 만난 탓에 출발 선상에서부터 뒤처져 있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면서도 "구체적인 계획은 밝히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조영창 기자 cyc1@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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