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기획사 'yescomm'의 박영란(36) 실장. 5년 전 IMF여파로 남편이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자 남편과 둘이 광고 회사를 차렸다. 큰 광고회사 국장까지 지낸 남편은 실력 있는 디자이너였다. 그걸 믿고 광고 회사를 차렸지만 수주가 문제였다. 남편은 디자이너였을 뿐 세일즈맨이 될 수 없었다. 그녀가 광고영업에 뛰어든 이유다.
이전에 박씨는 어린이집 교사였다. 샐러리맨의 아내였고 열 몇평 짜리 어린이 집 교사 경험이 사회생활의 전부였던 사람, 낯선 사람에게 말을 꺼내지 못해 우물쭈물하던 그녀가 영업을 해낼 수 있다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박 실장은 자신이 가진 것은 '깡'뿐이었다고 말한다.
매달릴 만한 학연도, 지연도, 혈연도 별로 없었던 그는 고집 하나로 부족 분을 메워 나갔다. 낯선 사람을 상대로 박 실장이 택한 영업 방식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 갖가지 모임, 행사, 클럽활동에 부지런히 참가했다.
그렇게 낯을 익힌 여성 인사들 집을 찾아 말동무가 되었고 설거지와 대리운전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자 조금씩 일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5년 동안의 영업을 통해 그녀는 많이 변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전화로 부탁도 할 줄 안다. 내숭이란 없다. 한마디 물으면 대답은 청산유수다. 박 실장은 요즘은 일할 만하다고 말한다.
한번 일을 맡겨 본 기업은 태도가 확 달라지기 때문이다. "제품을 잘 만드니까. 한번 거래를 하면 다음 거래로 이어져요. 그만큼 제가 수월하죠". 미래건설, LG전자, 이화여대, 진주의 쇼핑몰인 몰 에이지 등 전국의 내로라 하는 기업들이 8명의 소규모 기업 'yescomm'에 광고를 맡기고 있다.
IMF 후 대형 광고회사가 무너졌고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소규모 광고사들도 대부분 실패했지만 'yescomm'은 위기의 세월을 돌파했다. 실력 있는 남편, 궂은 일을 마다 않는 부지런한 아내가 있기 때문이다.
박 실장으로 불릴 때가 가장 편하다는 박영란씨. 그녀는 부부는 묶음임이 분명하지만 아내도 나름대로 삶의 영역을 가꿔야 한다고 생각한다.인생의 전부인줄 알았던 아이들이 자라 품을 떠나버렸다고 울적해하며 세월을 보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조두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