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양자택일에서 양자택이로

입력 2002-05-18 14:55:00

세상은 언제나 시끄럽다. 나라 안은 안대로 시끄럽고 나라 밖은 밖대로 시끄럽다. 하기야 이 세상이 언제 한번 시끄럽지 않은 때가 어디 한번이라도 있은 적이 있는가! 전통사회가 무너지고 산업사회가 들어서더니 이젠 산업사회도 가고 정보사회가 판을 치고 있다.

정보사회를 낳고 기른 과학기술의 합리성이 '모던'이라는 중병으로 앓아 눕자말자 '포스트모던'이라는 앞뒤 없는 칼자루가 인정사정 없이 닥치는 대로 기존가치의 목들을 날리고 있다. 이차판에 어느 누가 감히 목을 내밀 수 있단 말인가?그것이 대세인 것을! 대세에는 가치도 없고 기준도 없으며 자기 자신마저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한 방향만이 있을 뿐이다. 이러한한 방향이 서양사람들에게는 진보나 발전으로 보였고, 동양사람들에게는 퇴보나 무례함으로 보였다. 전자에게는 달성되어야 할 '과학의목표'가 중요하였고, 후자에게는 되 가져야할 '인간의 근원'이 중요하였다. 목표에는 '지식'이 살아 생동하나, 근원에는 '지혜'가 살아 숨쉼으로 상호의 역 방향은 불가피하였다.

이미 대세가 지식에 기울어져 있다면 득도한들 무엇하며 각(覺)한들 무엇하겠는가! 공자가 다시 살아나고 불타가 다시 살아난들 이 세상을 어떻게 뒤집어 놓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래서 사람들은 양자택일을 권하고 우리는 이자택일을 할 수밖에 없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고, 저것 아니면 이것이다. 지금의 이것이란 정보사회일 것이고, 이러한 정보사회의 가치들이란 권력, 돈, 사랑, 섹스, 엽기 등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앞뒤를 아무리 둘러봐도 사이버 공간의 현란한 감성뿐이지 어디 하나 반듯한 정칙(正則)이라는 것이 없다.

아예 어떠한 정칙도 용납하지 않으려 한다. 용납하면 보수라고 하고 구닥다리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한날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도 거기에는 하나의 원리원칙이 있고 윤리도덕이 있으며, 심지어 그러한 것을 부정하는 탈가치의 용솟음이라고 하더라도 그 자체로서는 무력하기 때문에 하나의 척도를 전제할 수밖에 없다.

이마저 부정한다면 나는 어디 있고 너는 어디 있으며 그리고 우리 모두는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나나 너나 우리 모두가 진정 하나의 '정보'일 뿐이란 말인가! 아니 사이버공간의 묘한 감성들: 이러한 것들만이 바로 지고의 가치들이라는 말인가? 결코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삶에는 생명의 충동으로서의 광기도 있었고, 그러한 광기를 잠재우고 일깨우는 어엿한 정신도 있었다.

그래서 오늘날의 우리들에게도 목표는 목표대로 필요하고 근원은 근원대로 필요하다면, 이들 양자중 일자를 택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들 양자를 다 수용할 수 있는 하나의 새로운 논리가 더욱 절실하다. 아무리 이 시대가 하나의 전형을 거부하고 나서는 탈가치화의 포스트모던시대라고 하더라도 감성적인 가치영역과 함께 이성적인 가치체계가 여전히 날실과 올실처럼 서로 짜여져 있음이 사실이 아닌가!

참으로 이성사회의 키워드(Keyword)였던 자유, 진리, 정의, 평등, 평화 등이 이 시대 이 사회에서 그저 속수무책일 뿐인가! 아니다.아무리 권력과 돈 그리고 섹스와 엽기가 지금 판을 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다가 아니고, 전체로서는 권력 대신에 권위가, 돈 대신에정의가 그리고 섹스와 엽기 대신에 사랑과 순수성이 그 역할을 여전히 하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새로운 광기의 파편들이 현실적으로물밀듯이 들이닥쳐 나를 대신하고 우리를 대신하고 있으니 나는 있어도 내가 아닌가 하면, 우리 역시 더 이상 우리 자신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로 이 정보사회의 이면에 서서 몸과 마음 혹은 감성과 이성 중 어느 하나라는 양자택일이 아니라, 이 양자를 다함께 가지는 양자택이를 할 때, 분명 이 양자간에는 갈등이 생길 것이고, 이러한 갈등관계는 서로를 대적하면서도 서로를 감싸안는 인간 삶의 긴장을 더 높일 것이다.

이러한 고조된 긴장의 관계야말로 그 양자의 주체인 인간존재 자체를 제자리에 머물지 못하게 하는 살아있는 역동성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역동성은 우리를 한날에 살게 하면서도 그 한날에만 살게 하지 않고 내일을 함께 살게 하는 인간 본래의 힘이리라.

백승균(전 계명대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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