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나 사회가 전근대적인가 아니면 근대적인가를 구분하는 데는 여러 가지 기준이 있다. 그 중 부패도 중요한 지표의 하나이다. 부패의 전형적인 형태 가운데 하나는 바로 '국가 사유관'이다.
'국가 사유관'은 지도자가 국가 공권력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겨서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관직을 마구 나누어주고, 그에서 생기는 이익을 거리낌없이 챙길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으로 전근대의 상징이다.
아무리 민주주의를 말하고 복지를 외치고 통일을 주장해도 이런 관행이 판치는 사회라면 가렴주구가 일상적일 수밖에 없게 되고 그 결과 서민의 고통도 끝이 없게 된다. 결국 이런 사회는 아무리 근대의 탈을 쓰고 있어도 본질적으로는 전근대 사회임에 틀림없다.
이 즈음 우리 사회의 부패상을 보면 다산이 '여유당전서'에서 지적했던 조선왕조의 부패가 떠오른다. 여유당전서 가운데 한양에서 지방으로 부임한 감사의 행렬에 대한 구절을 보자.
"감사가 부임지에 내려 올 때는 큰 기를 앞세우고 큰 일산을 펼친 쌍교차를 타고 오는데 북소리와 나팔소리에 그 행차가 요란했으며 관속은 수십 명이고 교군 구종군 관노 사령이 수백 명이며 사람 태운 말이 100여 필, 마중 나온 관속 아전들이 수백 명이고 강제로 끌려나와 구경하는 사람도 수천 명이나 되었다.
행차 시에는 그 일행까지도 감사를 닮아 진수성찬을 차려놓아도 불만족해서 상을 물리쳐 버리며 백가지 음식 중에 한가지가 맞지 않아도 음식 장만한 자를 곤장을 치며 행차 말이 돌에 채었다고 백성을 치고 길가의 질서유지에 잘못이 있었다고 또 치며 영접하는 부녀자들이 적다고 때리며 병풍이 곱지 않다거나 불이 밝지 않고 방이 덥지 않다느니 하면서 민중을 마구 때렸다".
지방 백성을 다스리는 감사의 첫 부임 행태가 이럴진대 무슨 다른 말이 필요하랴! 물론 그 시절 감사조차도 세도가문으로부터 돈주고 매입한 관직이고 보면 백성에 대한 가렴주구가 극심하게 자행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결과 백성의 고통은 "곤장과 항쇄, 족쇄, 수쇄로 날마다 가난하고 파리한 백성의 기름을 빨아내었다"는 기록 그 자체였을 것이다.
이들에 편승해서 지방 아전들은 일상적으로 지방민을 괴롭혔으며, 이렇게 해서 모은 재물은 곧장 한양의 세도가문으로 상납되고 있었다. 백성들은 문자 그대로 목불인견의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이 점에 대해 茶山은 詩에서 흉년에 굶주린 백성들의 참상을 이렇게 적어 놓고 있다.
"가다가다 고을 문에 이르러 보면/ 웅기중기 입만 들고 죽 솥으로 모여 든다/ 개 돼지도 버리고 거들떠 안 본텐데/ 굶주린 사람 입엔 엿보다도 달고나/ 어진 정사한다는 말 당치도 않고/ 주린 백성 구한다니 당치도 않네/ 관가 마굿간엔 마소들도 살찌는데/ 이건 바로 우리들의 살일러라/ 슬피 울며 고을 문을 나서고 보니/ 눈앞이 캄캄하여 갈 길은 막연하다/ 잠시 발 멈추어 마른 잔디 언덕에서/ 무릎을 펴고 앉아 우는 애기 달래노라/ 고개 숙여 우는 애기의 서캐 이를 잡노라니/ 두 눈에선 폭포같이 눈물이 곤두서네".
다산이 장기에 유배되었을 때 지은 이 시귀에서 '애기의 서캐 이'를 잡았던 사람들은 분명히 우리들의 할머니였을 것이고 그 어린아이는 우리들의 할아버지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보면 마음은 곧장 분노감에 치를 떨게 된다.
그때와 지금이 얼마나 다른가! 조선왕조의 부패와 지금의 부패 사이가 얼마나 차이나는가? 정말이지 요즘 들어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단순히 나이 탓만은 아닌 것 같다. 평생을 외눈 하나 팔지 않고 근검하게 살았던 우리들 보통 사람들에게 10억이며 100억은 도무지 계산이 되지 않는 천문학적 금액이다.
바로 그 액수의 돈을 이제 30, 40을 갓넘은 젊은이들이 아무렇게나 주무르는 세상을 만났으니, 그것도 부정과 뇌물의 연장선상에서 그러고 있으니 이것이야말로 '부패 공화국'의 전형적인 모습이라 해도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어떤 말로도 변명될 수 없는, 그리고 정치적인 타협이나 치졸한 맞불 작전으로 묻혀 질 일은 더 더구나 아니다. 적어도 10억이 얼마나 되는 돈인지를 모르고 살아 온 우리들 보통사람들의 그 한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 덮어 둘 일은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대명천지에 그것도 근대적인 민주사회임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전근대적인 부패가 만연하고 있다면 그것은 곧 나라의 지도자들이 조선왕조의 부패 척신들이나 고관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들임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들 때문에 바로 나라가 망했고 백성이 도탄에 떨어졌던 그 역사의 한을 되씹을 수 없기에 제발 '부패 공화국'의 그 오명만은 씻어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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