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을 통해 술을 두고 노래한 시인은 많았겠지만 그 중에도 당(唐)나라의 시성 이백(李白)의 명구(名句)는 더구나 가슴에 와 닿는다. '둘이서 마시노라니 산에는 꽃이 피네/ 한잔 한잔 또 한잔/ 내 취해서 잠들고자 하니 그대는 돌아가시라/ 내일 아침 맘내키면 거문고 안고 오게나'.
이 얼마나 여유로운가. 영국의 시인 키츠 또한 야앵부에서 '오 큰잔에 치렁한 따스한 남국, 진정 붉으레한 시(詩)의 샘물이여…'라며 술을 즐기고 예찬하고 있다.
▲우리나라 술 소비가 IMF기간동안 잠시 주춤하더니 지난해엔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앞질렀다 한다. 20세 이상 성인 1인당 지난 한해 동안 맥주 119병, 소주 79병, 위스키 1.4병 등 307만㎘를 마셔 97년의 283만㎘를 앞섰다는 것이다.
특히 소주, 위스키 등 증류주 소비는 1인당 5.2ℓ로 세계 최고 수준이며 맥주, 와인 등 발효주를 합친 전체 술소비도 1인당 7.6ℓ로 98년 세계 24위에서 지난해에는 19위로 발돋움했다는 것이다. WHO보고서에 따르면 20도 이상의 독주(毒酒) 소비량은 한국이 OECD회원국 평균 소비량의 5.6배가 된다니 이쯤 되면 즐기자고 마시는 술이 아니라 '자학하기 위해'마시는 술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사실 여러가지 술을 뒤섞어 갖가지 이름의 폭탄주를 만들고는 '원샷!' 하면서 털어넣는 그 모습이야말로 자기 학대 바로 그것 외에 달리 표현할 방법이 있을 성싶지 않다.
▲우리의 음주 문화어디에도 이젠 이백처럼 '그대 마음 내키면 거문고 안고 오게나'하던 그 여유나 '술, 진정 붉으레한 시(詩)의 샘물이여'라던 키츠의 찬탄을 찾을 길이 없어진 것만 같다. 대신 세파에 찌들린 인생살이에서 쌓이는 스트레스를 털어버리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며 통음하는 게 우리 음주모습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어떤 이들은 1960년대까지의 음주문화를 두고 일제의 망국의 한을 달래주는 '허무속의 술'로 표현했다. 또 80년대의 술은 '접대(接待)음주'로 표현했다. 어찌보면 지금 우리가 마시는 술은 접대 음주와 스트레스 해소가 뒤섞인 형태의 '한 잔'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임어당(林語堂)은 역저 '생활의 발견'에서 "공식석상에서 마시는 술은 천천히 한가하게 마셔야 하지만 마음에 슬픔이 있는 사람은 모름지기 정신없이 마셔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이 땅에 사는 우리 모두 무슨 큰 슬픔이 그리 있기에 오늘도 원샷을 외치며 이리도 겁없이 마셔댄다는 것인가. 이제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음주 문화가 자리잡을 때가 됐다.
김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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