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오후

입력 2002-05-09 14:12:00

천둥 번개가 무서웠던 시절이 있다

큰 죄 짓지 않고도 장마철에는

내 몸에 번개 꽂혀올까봐

쇠붙이란 쇠붙이 멀찌감치 감추고

몸 웅크려 떨던 시절이 있다

철이 든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느새 한 아이의 아비가 된 나는

천둥 번개가 무섭지 않다

큰 죄 주렁주렁 달고 다녀도

그까짓것 이제 두렵지 않다

천둥 번개가 괜시리 두려웠던

행복한 시절이 내게 있었다

-이재무 '무서운 나이'

어린시절 누구에게나 있음직한 경험을 기초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쉽게 공감이 가는 시이다.제목 '무서운 나이'도 의미심장하다.

천둥 번개가 무서운 어린 나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어른이 되어큰 죄를 주렁주렁 달고도 천둥 번개를 무서워하지 않게 된 뻔뻔스러운 나이가 무섭다는 뜻이 더 크다.

영국 시인 워즈워드는'무지개'라는 시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말 한 바 있다. 세파에 때가 덜 묻은 어린이의 순수함을 기리는 말이다. 좋은 시는 이처럼 우리의 삶을 한번씩 되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김용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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