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시대 농촌풍속도-노름판 옛말 정보사냥 삼매경

입력 2002-05-06 14:23:00

인터넷이 농촌의 모습을 바꾸고 있다. 면단위까지 초고속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이젠 농촌에서도 컴퓨터는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밤늦도록 도박판이 벌어지던 마을회관이 정보화 전초기지로 바뀌었고, 적극적인 농민들은 홈페이지까지 만들어 판로를 개척한다.농가 곳곳으로 스며들고 있는 인터넷 문화와 달라진 풍속도를 살펴보자.

성주 월항면 장산리는 참외를 주로 재배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 최근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마을분위기가 달라졌다.농사일을 끝낸 저녁이면 마을회관에 주민 10여명이 모여앉아 화투판.술판을 벌였으나 이젠 인터넷에 빠져 이런 풍경은 사라졌다.대신 인터넷에서 기상현황과 농산물 도매시장의 참외값 찾아보며 농사정보를 나눈다.

"예전에 밤늦게까지 화투판을 벌이는 날이면 아주머니들이 찾아와 부부싸움도 종종 벌어졌습니다. 여느 농촌 동네처럼 문제가많았죠. 그런데 주민들이 인터넷에 빠지면서 보기흉한 풍경들이 사라졌습니다". 새마을지도자 박병호(39)씨의 말이다.변화를 주도한 인물은 인터넷새마을지도자인 이장 박재원(49)씨. 박씨는 지난해 6월 지도자 교육을 받은 뒤 주민들을 가르쳐왔다. "처음에는 뭐하는 짓이냐며 반발하기도 했죠.

1, 2명씩 인터넷을 가까이 하면서 메일을 주고받으며 컴퓨터와 친해졌습니다. 농사일로 피곤해 하면서도 저녁이면 마을회관에 들러 컴퓨터 교육을 받고 내어준 숙제도 꼬박꼬박 해옵니다". 모범학생(?) 5명은 이젠 다른 주민들을 가르쳐줄 정도로 실력을 갖췄다는 것. 박 이장은 장차 인근 '도흥리 인터넷마을'처럼 만드는 것이 꿈이다.

하양읍 환상리에서 표고.상황버섯 3천여평을 재배하는 김영표(43)씨는 지난해 말 인터넷 홈페이지 '김영표 버섯농원'(www.pogokim.com)을개설한 뒤 생활의 변화를 실감하고 있다. 새벽 5시쯤 일어나자마자 홈페이지에 접속해 방문자 주문.문의에 답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1시간 정도 홈페이지를 관리한 뒤 낮시간 버섯재배 일에 매달리고 저녁엔 다시 인터넷을 통해 각종 영농정보를 검색한다.꾸준한 홈페이지 관리로 하루 10~20명씩 방문해 2, 3명씩 버섯을 구입한다.

지난 설에는 100여명에게 버섯을 통신 판매했다. 김씨는 "버섯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버섯성장 및 영농과정을 사진으로 담아 홈페이지에 게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용성면에서 포도 농사를 짓는 박경보씨는 홈페이지를 개설, 직접 생산한 농산물로 만든 포도.호박잼을, 압량면 천영자씨는 포도엑기스를 통신 판매한다.경산에서 인터넷을 활용하는 농민들은 100여명. 이중 10여명은 홈페이지도 직접 개설했다.

영덕에서도 홈페이지를 이용, 사이버 판매에 나서는 농민들이 점차 늘고 있다. 이상근(43.지품면 삼화리)씨는 복숭아, 신재한(45.지품면 황장리)씨는'꼭지있는 배', 신기량(45.축산면 축산리)씨와 이병두(50.강구면 오포리)씨는 사과, 이정이(39.창수면 창수리)씨는 '방가골 된장' 등을 판매한다.

문경에선 20여 농가가 홈페이지를 통해 영지버섯.상황버섯.사과.관상조류.토종닭 등을 사이버거래로 판매한다. "하루 방문객이 60여명에 이릅니다.인터넷이 없었더라면 도시민들에게 어떻게 홍보를 할 수 있겠습니까?" 관상조류를 사육하는 박승오(31.문경읍 하리)씨는 인터넷 덕을 톡톡히 본다고 했다.

김성균(51.칠곡 왜관읍)씨는 젊은 사람 못지않은 인터넷 애호가다. 비닐하우스에서 참외.오이.토마토를 재배하느라 힘든 하루를 보내지만 저녁식사를 끝낸 뒤엔 어김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밤늦도록 인터넷으로 또다른 농사를 짓는다.

"매일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영농정보와 농산물 시세 등을 알아두지 않으면 그만큼 정보에 뒤떨어져 손해를 보게 됩니다". 농촌에서 인터넷은 20, 30대의 전유물이 아니다. 요즘은 60대 농민들도인터넷으로 종자구입 등 영농에 나설 만큼 농촌 구석구석 인터넷이 파고들었다.

김천에선 지난 1/4분기 석달동안 정보이용센터를 통해 농촌주민 1천783명이 인터넷교육을 받았다. 농가 1만5천800여호 중 25% 정도가 인터넷을 통해 농산물가격과 일기, 병충해 방제법 등을 찾아 활용할 만큼 인터넷 이용도가 높아지고 있다.

울릉도라고 해서 인터넷 열풍의 예외지역은 아니다. 오히려 초고속인터넷 가입자가 1천80명으로 전체 인구의 10%에 이를 만큼 열기가 뜨겁다.군청은 지난 2000년부터 전산교육장을 별도로 마련, 노인.주부.학생 등 300여명에게 인터넷을 교육했다. 5월부터는 종전보다 2배 늘어난 매월 30명씩 신청자를 접수받아 교육할 계획이다.

인터넷이 농촌사회에 급격히 파고 들면서 사이버 도덕성이 문란해졌다는 비판도 일고 있다. 비록 일부지만 농촌 주부와 학생들까지인터넷을 통해 음란.폭력물을 무차별로 접하는터. 특히 채팅을 통한 불륜은 건전한 부부관계에 위협이 되고 있다. 지난해 5월 문경 모전동 한 주부(30)가 채팅을 하면서 다른 남자와 계속 만나는 사실을 알게 된 남편이 부부싸움 끝에 결국 비관 자살하기도 했다.

각종 사이버범죄도 폭증세다. 경북도내 사이버 범죄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배 가량 급증, 대구보다 오히려 많았다.아울러 초고속 인터넷이 면단위까지 보급되다보니 동.리 주민들은 정보화에서 소외되고 있다.

통신업체측은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동.리단위의 경우 100호 이상이 단체 신청할 경우에만 선로를 제공하고 있다. 현재 경북도는 단체신청 하한선을 30호로 낮춰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특히 한달 3만~4만원에 이르는 이용료도 농가로선 적잖은 부담. 정보화격차 해소를 위한 지자체와 통신업체간 협조가 절실한 실정이다.

성주.박용우기자 ywpark@imaeil.com

경산.이창희기자 lch888@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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